패션거장 앙드레김, 75세에도 나는 ‘워커홀릭’

“트렌드를 좇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국인의 감수성으로 차별화된 패션세계를 전 세계인에게 전파하는 ‘종합예술인’”

75세의 나이에도 20대 가졌던 패션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국민 디자이너’ 앙드레김을 지난 7일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앙드레김 의상실에 들어서자 다음 달에 있을 패션쇼 모델 오디션이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의상실 주변을 둘러봤다. 온통 화이트다. 곳곳엔 취미로 직접 수집하고 있다는, 유럽 왕실에서나 볼 수 있는 석고상들과 각종 크리스털 소품들로 가득했다.

국민디자이너, 패션 외교사절, 남성디자이너 1호 등 앙드레김에겐 수식어가 많다.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공연을 펼쳐온 결과물인 것이다.

물론 특유의 말투와 제스처, 짙은 화장, 하루에 3번씩 흰색 옷을 갈아입는 결벽증 등 그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많다. 하지만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섬뜩할 만큼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고집하고 있는 예술가 중의 하나라고 믿게 됐다.

그가 추구하는 패션은 생활문화로서의 종합예술이다. 그는 “트렌드를 좇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국인의 감수성으로 차별화된 패션세계를 전 세계인에게 전파하는 ‘종합예술인’”이라고 늘 강조한다.

앙드레김은 도자기부터 속옷, 냉장고, 건축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앙드레김 자전거’와 ‘앙드레김 여행가방’도 곧 출시될 예정이다. 또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건축분야에서도 타운하우스 ‘앙드레김 빌리지’가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도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 세계와 맞다고 생각하는 분야의 사업영역을 넓혀 나갈 생각입니다.”

◆패션에 대한 무한 열정...“나는 워커홀릭”

“새 달력이 나오면 제일 먼저 공휴일과 일요일 숫자부터 세어봅니다. 내게 쉰다는 것은 너무나 지겨운 일이고, 바쁘게 일하는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국내에 그보다 바쁜 디자이너가 또 있을까. 그는 해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매년 10~12차례 패션쇼를 펼치고 있다. 거의 매일 작품 구상과 아이디어 스케치를 한다. 퇴근 후 사람들과 어울려 호프집에도 가고 노래방에도 가는 평범한 생활은 해볼 틈이 없다.

특히 외국에서 열리는 패션쇼를 준비할 때면 그는 모든 과정을 직접 현장에서 체크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다. 그가 생각하는 패션쇼란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처럼 웅장하고 감동적이어야 하며, 의상과 음악과 미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종합문화예술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남녀 메인 모델의 애절한 연기와 포옹, 입맞춤, 그리고 앙드레 김 패션쇼의 하이라이트인 이마를 맞대는 포즈를 구성해 한 편의 극을 만들어내는 것도 그의 평소 예술 지론인 ‘종합예술의 세계’가 발현되는 순간이 곧 패션쇼인 것이다.

앙드레김은 거의 매년 쉬지 않고 미국, 일본, 중국, 스페인, 하와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호주 등 각국에서 화려한 무대로 한국의 패션을 전파하고 있다. 올해에도 태국 방콕을 시작으로 중국 상하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에서 해외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앙드레김과의 일문일답.

-앙드레김의 디자인 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지성적 아름다움과 교양미. 동양적인 신비감과 기품을 살린 종합예술이다."

-패션쇼 무대의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나.

"아름다운 자연을 봤을 때,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을 때 소름끼치는 영감을 얻는다. 그 외에도 클래식한 한국 왕실의 문양, 전통적인 조각, 유럽의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조각과 그림, 건축에서도 이 같은 영감을 떠올린다."

-연예인을 무대에 세우는 특별한 이유는.

"제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상업적인 패션쇼가 아니라 종합 예술이다. 훈련 받은 전문 모델들은 균형미와 세련된 멋이 있긴 하지만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연기자 모델은 풍부한 표정 연기를 통해 무대 위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한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다."

-얼마전 타개한 마이클 잭슨은 어떤 인물인가.

"마이클잭슨은 천재 아티스트이며, 색스어필이 아닌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진정한 가수다. 1999년 공연을 위해 한국을 첫 방문했을 당시 인연을 시작으로 3년 동안 마이클 잭슨에게 의상을 만들어 줬다. 그는 동양적인 신비감을 굉장히 좋아했고 의상에 대한 감각도 뛰어났다며 애도를 표했다."

-제2 앙드레김 아틀리에 건립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나.

"오는 9월이면 경기도 기흥에 3630㎡ 규모의 ‘제2 앙드레김 아틀리에’가 문을 연다. 현재 건물은 다 지었고 조경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선 앙드레김 디자인 연구 활동이 이뤄지고, 지인들을 초청해 최초의 ‘가든 패션쇼’도 열예정이다. 나무와 꽃이 가득한 정원으로 꾸밀 예정이다. 가든 패션쇼에서는 자연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유럽 왕실과 같은 무대를 선보이고 싶다."

-후계자는 있는가.

"후계자는 가족주의적 전통이 강한 한국적인 촌스러움이다. 아뜨리에 경영은 가족이 할 수 있지만 앙드레 김의 디자인 세계를 이어갈 디자이너는 가족이 할 수 없다.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아직까지 후계자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앞으로 10년은 더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피스컵 스페인 왕실 패션쇼가 원래 이달 20일로 잡혀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조금 연기 되고 있다. 또 내년 2010년에 밴쿠버에서 있을 동계올림픽 개막 축하 패션쇼 준비로 요즘 바쁘다. 굉장히 기대된다. 한국을 대표해 한국의 전통미를 또 한 번 세계에 알릴 계획이다. 마지막 남은 꿈은 ‘앙드레 김’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찍어 나의 패션 세계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아주경제= 최민지 기자 choimj@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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