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는 그림과 시를 좋아했고, 특히 의상에 관심이 많았다.
1951년 중학교 시절 피난처인 부산에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영화들을 보면서 세계의상의 유행이나 흐름을 알게 됐고, 의상 디자이너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파리의 여인’ 등에 나오는 여배우들의 의상이 나에게는 소름끼치게 신선한 충격이 됐고, 아~나도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앙드레김은 1962년 대한민국 첫 남성 디자이너가 됐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그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1966년에는 파리에서 첫 패션쇼를 여는 한국인이 되기도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국내외 17개 신문을 정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해외 패션쇼가 없는 경우 그는 대부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그의 의상실에서 작품구상과 제작에 몰두한다. 저녁에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87개 나라 대사관에서의 중요기념일 리셉션에 참가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그의 취미는 의상디자인이다. 그 이외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전부다. 그는 안하는 게 많다. 술과 담배, 커피는 물론이고 그 흔한 골프도 한번 쳐보지 못했다. 헬스클럽도 다니지 않는다. 노래방을 가본 적도 없다.
5남매 중 넷째지만 부모형제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40대에 아들을 입양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란성 쌍둥이 손자, 손녀 셋을 둔 할아버지다. 앙드레김은 입양아들을 소개하며 남다른 가족애를 드러내기도 했다.
“요즘 집에 돌아오면 손자들의 재롱에 푹 빠진다. 너무 예쁘고 귀엽고 제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을까. “저는 한국인이란 걸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미국이나 유럽 디자이너들이 갖지 못한 동양의 심비감과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한국을 대표해 전 세계에 인식 시키고 싶다." "80세가 넘어서도 계속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아주경제= 최민지 기자 choimj@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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