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운영하는 데 '혁신'은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과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흔들리지 않고 경쟁력 제고에 힘쓰고 있는 기업들도 혁신이라는 과제 앞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기업들이 쌈짓돈을 들여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하거나 그럴 듯한 최신 경영 이론을 앞다퉈 도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업 자체의 내부 역량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제 아무리 유능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첨단 이론을 끌어들여도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혁신의 바람은 기업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먼저 휘몰아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조직 구성원간의 양적ㆍ질적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 AT커니는 최근 낸 '이그제큐티브어젠다(Executive Agenda)' 12호에서 최고경영자(CEO)가 기업 내부에서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왜, 언제, 어떻게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인지보다는 기업 내부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의 성공 여부는 조직 구성원들이 얼마나 변화에 민감하고 이 변화에 얼마나 주체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고 AT커니는 지적한다. 따라서 기업 내부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는 게 첫 번째 과제다.
조직원들 사이의 상호작용 범위와 수위는 무엇보다 인적관리의 폭에 따라 제한된다. 팀장이 관리감독해야 할 팀원의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직접 대면을 통한 수평적인 의견 교환 기회는 적어진다. 그런 만큼 리더에게 딸린 부하 직원의 수는 업무가 가능한 선에서 제한될 필요가 있다.
AT커니는 미국 정보기술(IT)업체인 주니퍼트리테크놀로지를 사례로, 적절한 인적관리 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현재 주니퍼트리테크놀로지는 세 명의 파트너가 특정 프로젝트를 맡아 15개 부서의 지원팀을 거느리며 40개의 소프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얼핏 수평적 관계에 바탕을 둔 효율적인 조직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수평적인 조직 체계가 오히려 프로젝트 진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AT커니는 지적한다. 이 회사의 조직은 세 명의 파트너가 각자의 전문영역을 맡아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이들이 관리해야 하는 직원의 수가 너무 많아져 과제 수행에 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뤄야 하지만 직원들의 밀도가 너무 커 변화를 수용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AT커니가 꼽은 실패 요인이다. 망망대해에는 풍랑이 거세게 몰아칠 수 있지만 호수에는 기껏해야 잔물결이 일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직의 유기적 짜임새도 중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이 혁신을 위한 여러 과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데 전사적 기업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업 내부 각 부문이 구체적으로 업무를 분담하고 있을 때, 혁신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획, 실행, 평가 등 전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 때 IT 시스템이 기업 역량 통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AT커니는 조언한다.
일례로 어떤 기업이 영업력을 높이기 위해 전화를 통한 직원들의 영업시간을 평균 2배로 늘리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때 직원들의 통화시간과 고객 반응 등을 데이터화해 분석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해당 직원과 각 부문 임원은 이를 토대로 상호작용하며 고객의 요구를 확인하고 새로운 판매전략도 세울 수 있다.
복잡성 관리도 기업 혁신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복잡성이 클수록 기업 내부 통제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인과 비용이 늘어나 혁신에 쏟아 부을 역량은 축소되기 때문이다.
복잡성을 잘 통제하면 다양한 제품을 하나의 마케팅전략과 유통망에 실어 판매할 수 있어 수익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복잡성이 크면 클 수록 낭비되는 비용과 에너지도 늘어난다. 특히 복잡성은 기업 인수합병(M&A) 이후 극대화된다. 통합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복잡성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AT커니는 혁신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필요한 핵심 역량은 각 부문의 복잡성에 따라 재분배하라고 조언한다.
이밖에 AT커니는 혁신을 불러오기 위한 일련의 변화가 단발성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리더들은 팀 구성원들과 지속적인 일대일 면담을 통해 혁신에 대한 공감대를 유지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하며, 개개인의 혁신 목표와 실행 여부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라는 지적이다.
또 혁신 목표에 따라 전사적 역량을 동원할 것인지, 핵심 부문의 역량만 동원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AT커니는 조언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