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월가를 비롯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지적됐다. 규제 완화와 감독 부재가 즉각 공격과 비판 대상이 됐다. 주택담보부증권(MBS)과 모기지담보채권(CMO), 신용파산스왑(CDS)을 포함한 파생상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작년 11월과 올해 4월 열린 G20(주요 20개국) 회담에서 팽창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일단 위기를 극복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어 기축통화체제 개편에 대한 논란 속에 미국은 금융 감독ㆍ규제 체계 개편안 등 후속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위기 완화도 가시화됐다. 구제금융을 받았던 JP모건체이스를 포함한 대형은행 9곳은 지원받은 공적자금을 조기 상환하고 나섰다.
미국 월가는 위기 전과 후 분명 달라졌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리스크관리 강화와 리스크매니저 위상제고다. 더 많은 거래를 원하는 트레이더가 한도 확대를 요청하면 대부분 '노(No)'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리스크 매니저와 다투는 것은 해고로 가는 지름길이란 이야기도 들린다. 위험관리에서 위험회피를 넘어 위험증오 수준까지 간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파생상품 축소와 기피 현상도 달라진 점이다. MBS 부문은 거의 초토화됐다. 구조화금융 즉 파생상품과 일반금융상품을 결합해 다양한 신종금융상품을 만들어내는 부서도 아예 없어진 경우가 많다. 이 부문에 대한 기피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과도한 레버리지가 필요한 비즈니스와 부서도 줄었다.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인수합병 딜은 거의 사라졌다. 파생상품과 인수합병 거래가 위축되면서 이에 대한 법적인 부분을 담당하던 로펌마저 타격을 입었다. 계약담당 변호사는 해고되는 반면 소송담당 변호사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올해 1분기 주요 금융사 영업이익 가운데 상당부분이 채권 매매ㆍ단순 모기지를 포함한 전통적 영업부문에서 비롯됐다는 소식은 현재 상황을 가늠하게 한다.
예금 기반이 있는 상업은행(CB)이 투자은행(IB)보다 유리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레버리지에 대한 공포로 예금ㆍ대출 같은 전통적 비즈니스가 제일이란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특히 상업은행업과 투자은행업을 겸영하는 금융지주회사 모델 '은행기반 기업상대 투자은행(CIB)'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가 금융감독 강화에 나선 것 역시 위기로 달라진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앙은행 감독권한 강화와 규제감독위원회 신설방안을 발표했다. 중앙은행이 정부와 함께 금융시스템 전반을 위협하는 리스크를 감시ㆍ감독하도록 하는 것이다. 감독 강화를 도모하되 위원회 조직으로 중앙은행과 정부, 감독기구 간 협조체제 구축을 추구하는 모형은 우리도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미국에 비하면 우린 훨씬 나은 편이다. 투자은행업에 상당한 규제가 존재했고 이를 일부 완화하는 차원에서 자본시장법이 제정ㆍ시행됐다. 미국이 시속 200km로 달리다가 사고가 났다면 우리는 시속 50km 정도로 달리면서 조금 속도를 내볼까 하고 준비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선 사실상 규제 사각에 있던 장외파생상품도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상품으로 지정해 명시적 규제를 받도록 했다. 국내 금융기관이 세계적 금융위기에서 한발짝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동안 레버리지에 대한 공포, 위기에 대한 기억이 시장을 압도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흘러 시장이 정상화되면 금융상품 출시도 다시 적극적 형태로 이뤄질 것이다. 즉 옛날보다 강화된 수준이지만 현재보단 완화된 새로운 영업모형이 시장에 등장할 수 있다. 금융에서 핵심이 상업은행업과 투자은행업이라면 레버리지를 줄인 건실한 투자은행업 모형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위험도가 낮은 투자상품이나 금융딜에 우선 초점을 맞추되 중장기적으론 지금보다 공격적인 형태로 서서히 옮겨가야 한다. 적절한 대비와 변신에 대한 준비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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