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 캠페인) 스마트 그리드, 선택이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 2030년 스마크 그리드 관련 수요 2조9880억 달러

   
 
 

서울 상계동에 사는 주부 이경희(48)씨는 지난달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아보고 확 짜증이 밀려왔다.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낮 시간에 에어컨을 조금 틀었더니 전기요금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매달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아보면 ‘언제 내가 이렇게나 썼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심야시간에 전기를 이용하면 전기요금이 싸다는 건 알지만 그 시간에 잠 안자고 일을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심야시간에 전기를 모아두었다가 낮에 쓰는 그런 기술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 씨의 말이다.

그런데 조만간 이 씨가 꿈꾸던 그런 기술이 현실이 될 전망이다. ‘스마트 그리드’기술을 활용하면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은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한 시간에 스스로 작동을 하고,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에 전기를 충전해 두었다가 요금이 비싼 시간에 활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지능형 전력망)’란 전력선에 정보통신(IT) 기술을 도입한 개념으로 기존의 전력 전달체계가 발전소에서 가정에 이르는 일방적 통행이었다면 스마트 그리드는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양방향 통신이 기본이기 때문에 스마트그리드를 활용하면 전력회사는 각 가정의 전력 수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또 각 가정의 전력수요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냉방 전력수요가 급증할 땐, 가정의 전기밥솥이나 냉장고, 식기건조기 등에 대한 전력공급을 감소시키는 식이다. 거대한 배터리 역할을 하는 하이브리드 차나 기타 2차전지를 활용하면 전력 수요가 적은 밤에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많은 낮에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전력수요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 한 여름 냉방수요가 급증하는 며칠 동안만 가동할 발전소를 건설하느라 자원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가정에서도 전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 가전제품이 전기가 가장 싼 시간에 작동해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으며, 일일이 돌아다니며 플러그를 뽑지 않아도 가정 내 전력소비 10%를 차지하는 ‘전기흡혈귀’ 대기전력을 차단할 수 있다. 


   
 
 

이처럼 스마트 그리드를 활용하면 전체적인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 그리드 사구축시 에너지 절약 효과는 6% 내외로 추정된다.  이 경우 국내에서 연간 1조8000억원의 전기요금이 절감된다. LS산전이 80가구를 대상으로 2개월간 실증작업을 거친 결
과 13%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참고로 서머타임제 도입시 전력 소비량 감소율이 0.3% 수준임을 감안하면, 스마트 그리드의 에너지 절약 효과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공급 측면에서는 피크 전력을 10%(700만kW) 줄일 경우 연간 1조원의 설비 투자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기저 발전설비의 저가 원료를 활용한 생산 비용 절감 효과도 더해
질 것이다. 미국의 시범 사업 결과는 피크 전력 수요가 12~50%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스마트 그리드를 적용하면 신재생에너지원 활용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지금처럼 중앙통제식 전력망에서는 화력발전으로 전력을 충당해온 도시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원을 활용하려 해도 현실화가 어렵다.
 
원할 때 발전할 수 있는 화석연료 발전과 달리 신재생에너지 발전에는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가 많을 때 해가 반짝 반짝 빛나거나 바람이 강하게 분다는 보장이 없다.

스마트 그리드는 이 처럼 신재생에너지 발전시 제각각 생겨나는 소규모 전력 수요와 전력 공급을 적시에 매치시켜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 

관련 업계는 스마트 그리드 구축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활용과 에너지 효율화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오는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24억t(4.6%), 우리나라는 2700만t 가량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스마트 그리드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지난 1월초 미국의 한 에너지컨설팅 회사는 미국 정부가 4년 동안 스마트 그리드 초기 투자비용의 25%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160억 달러를 투입한다면, 640억 달러의 전체 투자를 유발해 총 28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스마트 전기계량기 등 장비 공급업체나 고객서비스 업체 등의 직접적인 일자리가 11만7700여개였고, 이들 기업에 부품 등을 공급하는 업체의 일자리가 7만9300여개였다. 이 같은 일자리 창출 효과는 올해 안으로 1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정도로 즉각적이었다. 또 많은 수는 건설노동자 등 임시직 자리였지만 적어도 14만개는 지속가능한 일자리였다.

산업연관효과가 큰 만큼 시장규모도 만만치 않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30년까지 스마트 그리드와 관련해 2조9880억 달러의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규모를 중전기 분야에 국한해봐도  스마트 그리드 관련 송배전 분야 중전기 국내 시장 규모는  2015년 연간 1.2조원, 2030년에 2.1조원에 달하고 세계 시장은 2020년에 400억 달러, 2030년에 780억 달러의 시장이 형성될 것 이라는 게 키움증권의 분석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아직 이 시장이 기술표준을 독점하거나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업체가 없는 무주공산이라는 점이다.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가장 적극적인 미국의 경우 2003년에 미국 에너지부(DOE)가 내놓은  2030년까지의 전력 인프라 발전 계획인 ‘Grid2030’에서 스마트 그리드가 처음으로 언급됐다. 이후 2007년 에너지부가 제정한 ‘에너지 자립 및 안보법(Energy Independence and Security Act)’에서 스마트 그리드를 명시하여, 2020년까지 국가 송배전망 고도화, 수용가 전력사용 효율화 등을 추진하기로  해 1994년부터 연구가 이뤄진 우리나라보다 그리 빠르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후 스마트 그리드를 그린뉴딜 정책의 핵심 정책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미국 민간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지원 아래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엑셀에너지(Xcel Energy)사는 콜로라도주 볼더(Boulder)시에 스마트 그리드 시티를 구축해 주목을 끌고 있다.  엑셀 에너지 사는 1차로 1만5000가구에 스마트 미터를 공급했고, 추가로 3만5000가구에 공급할 예정이다.

전통적으로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확산에 적극적인 유럽은 신재생 에너지 등 고효율 저탄소 분산형 전원의 보급 확대, 환경 보전, EU 국가간 전력 거래에 초점을 맞춰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접근하고 있다.

유럽은 EU 집행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2005년에 사업 추진 조직을 구축하여 유럽형 스마트 그리드를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EU는 2022년까지 전 건물의 80%를 스마트 그리드에 포함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은 2020년까지 70억 파운드를 투입해 전 가정에 스마트 미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기술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우리가 미국과 유럽에 그다지 뒤처지지 않는 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문승일 서울대 전력연구실 교수는 "우리나라도 이미 10년전부터 국책사업으로 전력IT 연구사업에 투자 스마트 그리드를 위한 요소기술 개발에 착수해 왔다"며 "스마트 그리드와 관련해 미국이나 유럽과 기술적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말한다. 

따라서 문제는 누가 먼저 780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을 선점하는가다. 스마트 그리드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문제는 속도다. 

아주경제= 이형구 기자 scaler@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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