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전자어음' 횡포에 중소기업 죽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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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7-2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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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행 어음은 수취거부, 대출알선 요구까지

#1) 경기도에 위치한 중소기업 K전기는 대기업 H사에 물품을 납품하고 판매대금을 전자어음으로 받았다. 이후 어음 할인을 위해 H사의 거래은행인 W은행을 찾은 S전기 대표는 H사가 발행한 어음에 문제가 생길 경우 물품 판매자인 S전기도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전자어음법은 어음 부도가 나더라도 판매자에게는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2) 조립식 건물용 자재를 납품하는 A사는 H은행에서 발행한 전자어음을 S은행 계좌로 수취한 후 할인을 하기 위해 S은행 영업점을 찾았다. 그러나 은행 직원은 타행에서 발행한 어음은 할인이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조급해진 A사 대표가 다시 부탁을 하자 은행 직원은 주위에 대출이 필요한 중소기업을 소개해주면 할인을 고려해보겠다며 대출 알선을 종용했다.

정부가 기업간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어음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은행들이 전자어음 유통을 제한하는 각종 편법을 자행해 중소기업만 골탕을 먹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전자어음 할인을 요구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법에도 없는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대출 알선을 요구하는 등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일부 은행은 구매자가 발행한 어음에 문제가 생길 경우 판매자에게도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어음을 받아주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업간 거래(B2B)에서 주고 받는 전자어음은 미수나 부도 위험 없이 거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금융기관에서 구상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하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전자어음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전자어음 거래 과정에서 구매자가 부도를 내는 등 어음 유통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판매자에게는 원칙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없다"며 일부 은행의 구상권 청구 행태를 비판했다.

일정 금액 이상은 어음 할인을 안 해주거나 어음 수취 및 할인을 빌미로 대출 알선을 요구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H사료 대표는 "판매대금으로 3000만원짜리 전자어음을 받은 후 급전이 필요해 은행으로 어음 할인을 하러 갔는데 한 번에 1000만원 이상은 할인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런 식으로 할인 한도를 적용하면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도산 위기로 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이 발행하는 어음을 받지 않는 관행도 문제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전자어음을 받을 때마다 구매자가 거래하는 은행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한 중소기업이 10여 개의 은행 계좌를 관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천에 위치한 I시스템의 경리 담당자는 "거래업체마다 은행이 달라 전자어음 결제를 할 때마다 해당 은행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며 "한 달에 3개 은행의 계좌를 개설하고 약정을 체결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금융결제원 e사업실 관계자는 "전자어음 거래는 인터넷뱅킹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특정 은행이 어음 수취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어음 할인을 위해 영업점을 찾았을 때 은행 직원이 타행 어음을 할인해주지 않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오는 11월 9일부터 자산 규모 100억원 이상이거나 코스피 및 코스닥에 상장된 업체는 의무적으로 전자어음 거래를 해야 한다"며 "제도가 시행되면 전자어음과 관련된 폐단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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