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우건설을 매물로 내놨지만 국내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한데다 기업 수익성도 악화돼 대우건설과 같은 대형 매물을 섣불리 인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외 건설사나 사모펀드가 인수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대우건설이 해외로 팔려 나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기업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대우건설을 너무 쉽게 외국계 기업에 넘겨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 대우건설, 국내 매각 가능성 희박
대우건설이 국내 시장에서 매각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경제 전망이 불투명해 기업들의 투자 및 사업 확장 의지가 꺾인데다 금융시장이 아직 불안해 인수 여력을 가진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포스코·롯데·현대중공업·한화·LG·효성 등을 잠재적 인수자로 꼽고 있지만 이들 기업 중 인수 의사를 공식화한 곳은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투자기관인 국민연금공단도 지난 17일 대우건설에 '관심없음'을 명확히 한 바 있어 정부 자금 투입도 어렵게 됐다.
풋백옵션도 대우건설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지난 2006년 대우건설의 대주주였던 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대우건설 지분 72%를 주당 2만6000원에 사들였다. 당시 부족한 인수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기관들로부터 돈을 빌린 뒤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2000원을 밑돌면 되사주기로 하는 풋백옵션을 제시했다.
하지만 23일 현재 대우건설 주가는 주당 1만3000원에 불과해 금호그룹은 4조원 가량을 금융기관들에 지급해야 한다. 결국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매각을 통해 풋백옵션으로 발생할 손해를 상쇄할 수 밖에 없다. 향후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가격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 외국계 기업 인수 가능성 고조
현재로서는 외국계 기업이나 자본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온 대우건설에 눈독을 들이는 해외 건설사나 사모펀드 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한 건설사는 산업은행을 방문해 대우건설 인수에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설사는 대우건설의 사회간접자본(SOC) 시공 능력을 높게 평가해 지난 2004년에도 캠코에 인수 의사를 표명하는 등 이전부터 대우건설에 군침을 흘려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건설 매각 주간사인 산은과 노무라증권도 해외의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 모두에게 대우건설 입찰 참여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인수자의 성격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대주주, 매각주간사, 해외 인수자의 의견이 맞아 떨어진다면 대우건설 매각 작업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우건설의 대주주인 금호그룹과 매각주간사인 산은 및 노무라증권, 외국계 기업의 뜻이 맞으면 바로 M&A가 이뤄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우건설 매각이 아직 불투명하지만 현재로서는 외국계 기업이 가져갈 확율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 '땡처리' 논란 재연되나
대우건설이 외국계 기업 및 자금으로 넘어갈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우선 금호그룹이 욕심을 부려 대우건설을 인수하고도 3년 만에 해외로 매각할 경우 토종 알짜 기업을 팔아버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처럼 또 다시 '땡처리', '먹튀'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최근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해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세 차익을 올리기 좋은 대상이다. 경제가 회복되고 대우건설 주가가 예년 수준을 회복한다면 막대한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다.
외국계 기업에 엄청난 시세 차익이 돌아갈 경우 정부와 산은은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진다.
최근 해외 기업들이 대우건설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는 정보가 산은 측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A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최근 다소 부진한 기업구조조정을 본격화하기 위해 정부가 대우건설을 서둘러 매각하려는 것 같다"며 "산은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인수자를 찾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정부가 직접 매입하거나 산은 사모펀드(PEF)를 통한 인수 등의 노력은 배제하고 해외 매각에 집착할 경우 외국계 기업의 돈벌이를 도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최호상 외환은행 연구원은 "지금 당장 유동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폭탄 돌리기식 매각 작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며 "해외 기업의 투자 의지 및 계획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