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 관련 명단을 확보하고도 검찰이 일부만 기소하는 행위로 검찰 수사가 형평성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박 전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은 23일 한나라당 박진 의원 공판에서 "검찰에서 돈을 줬다고 진술한 사람 가운데 기소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모두 10여명의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줬고 여·야 의원이 반반 정도 분포하고 있다"며 "4∼5명에게 2000만원, 4∼5명에게 1000만원, 1명에게 500만원을 전달해 전체적인 규모는 모두 1억8000여만원"이라며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했다.
박 전 회장도 "(정치자금을 전달할 때) 당에 따라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며 "박진 의원 외에 직접 돈을 전달한 한나라당 의원이 한 명 더 있고 박씨 성을 가진 다른 의원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 K식당 주인 곽모씨 역시 이날 민주당 서갑원 의원 공판에서 "박 전 회장의 돈 45만달러를 관리하며 민주당 이광재·서갑원 의원을 포함해 10여명의 인사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 사장은 22일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 공판에서 "일부 의원은 받지 않겠다고 말해 현금으로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한 현역 국회의원은 이광재·서갑원·최철국·박진·김정권 의원 등 5명이다.
하지만 박 게이트의 핵심 당사자들이 이같은 진술을 내놓으면서 검찰이 '박연차 리스트'를 사실상 확보하고서도 선별적으로 수사 또는 기소를 해 형평성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의원 측 변호인은 "어떤 기준으로 기소 대상자를 선정한 것이냐. 10여명의 명단을 공개하라"며 검찰의 편의적 공소권 행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후원자 1명이 국회의원 1명에게 전달할 수 있는 후원금 한도는 연간 500만원이고 타인 명의로 기부받은 돈은 국고에 귀속시켜야 한다.
즉 차명으로 1000만원∼2000만원을 받거나 후원회를 거치지 않고 현금이나 달러로 돈을 받은 행위는 모두 불법인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박연차 리스트'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리스트는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지만, 정 사장은 "박 전 회장의 지시로 후원 대상 의원 명단과 금액이 적힌 `운동화 지급자 명단'을 작성해 결제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박연차 리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인데, 이들의 진술을 계기로 당분간은 검찰 수사의 형평성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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