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궁핍의 시대가 백성을 궁지로 몰고 있다. 조용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있다. 대운하에 이어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쌍용차 사태를 거쳐 이른바 MB악법의 어처구니 국회 통과까지.
맹자가 살던 세상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많았던가 보다. 그는 ‘이루상편(離婁上篇)’에서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고 경고했다. 즉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지만,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라고.
쌍용차 평택공장에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시시각각 타전되던 지난 20일, 노조 간부 이 모 씨의 아내 박 모 씨가 아파트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네 살과 8개월 된 아이를 놔두고. 올해 서른, 이제 막 행복이 무엇인지 느낄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공권력을 투입 한 이명박 정권과 사측이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힐난했다. 사측과 경찰은 산후 우울증 때문이라고 맞받아쳤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까지 했다.
그사이 밀린 월급과 공권력 투입으로 마음고생을 해온 ‘진실’은 사라졌다. 회사에서 회유와 압박을 한 사실도 지워졌다. 대신 새총과 화염병, 극한 대립이 빈자리를 채웠다.
브레이크 없는 현 정권의 폭력성과 무자비함이 사법 살인을 부르고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와 사측의 무자비한 구조조정이 계속될 경우 이런 일은 또 다시 반복될 것임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박 씨의 장례식장에 있던 다수의 농성자 가족들은 이미 최근 쌍용차 사태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60일 넘게 이어진 파업으로 생이별한 가족들이 겪는 불안과 생활고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농성자 가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자살 사흘 전 사측으로부터 “그런 식으로 하면 남편이 감옥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 소리에 남편에게 울면서 전화를 할 정도로 심약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옥쇄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노조원 대부분의 가족들이 겪고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 사인을 산후 우울증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모든 원인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정리해고를 감행한 쌍용차 사측과 정부의 무책임한 공권력 투입이 불러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울증이 없었더라도 두 달이 넘게 지속된 사태를 지켜보며 심리적 압박이 더해지고, 남편과 아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을 목도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을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빠를 사지에 내몬 것이라고 자책도 하게 된다.
문자만 와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판국이다. 아빠의 투쟁을 경찰들의 뒤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용역 놀이를 한다. 경찰을 보면 나쁜 경찰인지 좋은 경찰인지 물어볼 정도라고 한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버리는 결과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쌍용차 정리해고반대 창원가족 대책위’ 소속 조현정씨는 21일 추모집회에서 “4살과 8개월 된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최고로 두려움과 공포로 몸서리 치고 있을 때 죽었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외면’이라는 쉬운 선택을 한 우리도 포괄적 살인방조자들이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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