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휴가철이다.
무더운 여름에 잠시 보내는 휴가는 다시 돌아 갈 일상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그래서 모두들 휴가를 떠난다.
바다와 강, 계곡은 피서객들로 만원이고 도로는 피서 차량들로 넘쳐 난다.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휴가는 예년과 다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도 지난주 휴가를 보내고 왔다. 예년처럼 가족들과 시골집을 찾아 부모님과 함께 더위를 식히며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휴가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피서객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서 모두들 큰 돈 들이지 않고 피서를 즐기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해는 경기 침체의 여파로 수입이 줄면서 멀리 움직이지 않고 집 가까이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머물다'(stay) 라는 동사와 '휴가, 여행'을 뜻하는 '베이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다.
휴가 기간에 먼 곳으로 여행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쉬면서 당일치기 여행, 그 지역에서의 짧은 여행을 한다는 뜻이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비싼 기름을 써가면서 버거운 여행을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집에서 쉬면서 그 지역을 돌아보자는 제안이 담겨 있는 셈이다.
집에서 옴짝달싹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가까운 공원에서 산책하거나 수영장에서 즐기는 것, 박물관·전시관·영화관을 찾는 활동 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방콕'과는 약간 다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디에 갈까'가 아니라, '어떻게 휴가를 보낼까'를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다.
이 때문인지 휴가 중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은 "휴가는 잘 보냈느냐고, 어딘가 다녀왔느냐고, 사람들이 묻곤 하는데, 앞으로는 그런 거 묻지 말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람에 따라 휴가를 즐기는 법은 다양하기 마련이다.
연극·영화를 보거나 재충전을 위해 독서를 하는 이들도 있고, 피서 인파가 싫어 호텔에서 보내기도 한다. 어떤 이는 밀린 잠을 실컷 자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한다. 집에서 조용히 쉬면서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거나 부족했던 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다.
휴가법이야 어떻듯 이번 휴가가 이미 존재해 온 사회의 일정한 틀 속에서 쫓기듯이 살아온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바캉스의 라틴어 어원인 '바누스(vanus)'는 빈자리나 공허함을 이른다. 휴가로 마음을 비우고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가는 휴가를 잘 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소신껏 휴가를 즐기기보다는 남들 눈치 보기 바쁘다 보니 '무늬만' 휴가로 포장한 채 돌아오는 길엔 예기치 않았던 휴가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소비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휴가는 늘 주머니 사정에 부담을 안겨줄 것이요. 항상 새롭고 보다 자극적인 휴가를 찾아 헤매는 한 휴가의 뒤끝은 공허감과 쓸쓸함으로 가득 찰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집을 비우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여름이 되길 빌어본다.
아주경제= 서영백 기자 inch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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