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포르테 LPi 하이브리드 연구개발(R&D) 스토리/현대·기아차 제공 |
“도요타의 20%도 되지 않는 연구 인력으로 세계 최초의 LPi 하이브리드카를 만들어 낸 것은 마치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전선으로 왜선 133척과 맞서 싸운 명량대전과 유사합니다.”
세계 최초로 LPi 하이브리드차(HEV)를 개발한 현대·기아자동차가 지난달 말 펴낸 ‘아반떼·포르테 LPi 하이브리드 연구개발(R&D) 스토리’라는 제목의 사내 책자를 통해 이기상 하이브리드개발실장(상무)이 던진 말이다.
이 상무는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차 개발의 야전 사령관으로 불린다. 2005년부터 HEV 개발의 실무책임자로 근무하며 LPi HEV의 상품 발의와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을 총괄했다.
그는 책자에서 하이브리드차 개발 선두주자인 일본 도요타가 2004년에 닛산이나 포드처럼 현대·기아차에도 하이브리드차 기술과 부품을 공유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 상무는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도요타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곧바로 내부검토가 시작됐다. 손쉽게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독자 개발을 할 것인지를 두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상무는 “기술 제휴를 하면 쉽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독자 개발을 하기에는 투자해야 할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층과 실무진은 기술종속을 우려해 도요타의 제안을 거절한다. 내연기관을 대체할 차세대 동력장치의 초석이 될 하이브리드 기술이 종속되면 미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감의 배경에는 독자적인 기술 개발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1990년대 엔진 독자 개발을 시작으로 기술력을 쌓아온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험로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도요타 유혹 뿌리치니 ‘가솔린 or LPG’ 기로
처음에는 가솔린 하이브리드차 개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달콤한 유혹이 지난 이후 도요타나 혼다와 같은 정도의 HEV 기술로는 시장에서 차별성이 없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상무는 “‘HEV 후발주자인데 경쟁차와 동등한 수준의 차량을 출시하면 누가 주목해줄까?’라는 의문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해법 마련을 위해 기술력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세계 유수의 업체들이 탐내는 LPi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합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상무는 “한국은 폴란드와 더불어 세계 최대의 LPG 차량 보유국으로 LPG 인프라가 잘 되어 있고, 가격도 가솔린의 절반 수준이어서 완벽한 한국형 HEV가 가능했다”며 “그 때부터 최초 시판 HEV를 가솔린에서 LPi차 개발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고 말했다.
배터리에 대한 뒷담화도 극적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베르나, 프라이드 하이브리드차에 쓰인 배터리는 일본업체에서 개발하던 NI-MH(니켈수소) 배터리였다. 이 업체는 도요타와 혼다 등에 납품을 하는 업체로, 현대·기아차에게는 비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업체를 바꾸기로 하고 LG화학에 차량용 차세대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 개발을 제안했다. 그사이 2008년 차세대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 탑재를 공언한 도요타가 개발상의 문제로 시기를 2010년으로 연기 한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이 상무는 “당시 도요타도 어려운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차량용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를 개발하게 된다. 당연히 국산 하이브리드차에 세계 최초로 탑재됐다.
현대·기아차가 하이브리드차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초. 이 전무는 “개발 초기 연구원들은 겨우 30명 남짓이었다”며 “야근과 휴일 근무도 마다 않고 부품 국산화 연구에 집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세계 최고 수준의 LPi 하이브리드차를 개발한 것이다. 이 상무는 “2000여명이 넘는 도요타에 비해 20%도 되지 않는 연구 인력으로 세계 최초의 LPi 하이브리드카를 만들어 낸 것은 마치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전선으로 왜선 133척과 맞서 싸운 명량대전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나 호주, 네덜란드에서 현대·기아차의 LPi 하이브리드차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개발에 매달려 흘린 무수한 땀방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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