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의 수레바퀴) ‘식스센스’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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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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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남의 불행을 매우 즐겁게, 혹은 쾌감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겠지만, 유독 이 땅, 삼천리금수강산에서만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아 가끔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반어법이겠지만, 오죽하면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이 말은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면 측백나무(잣나무라고도 함)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이웃·친구·사촌이 잘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속에는 인간의 이기적 불신을 꼬집는 의미도 담겨 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같은 상록교목이다.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아 옛날부터 선비의 대쪽 같은 지조와 기개를 의미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의 관계는 결국 인간관계를 칭한다. 가까운 이들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도리이자 근본이라는 뜻이다.

같은 뜻으로는 혜분난비(蕙焚蘭悲)라는 말이 있다. 혜란(蕙蘭, 난초의 한 종류)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이다. 벗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유명한 고사인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백아와 종자기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절친한 벗 종자기(種子期)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 이를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고 한다. 평생을 살면서 진정한 벗 한 명을 얻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이들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물질이 지배하는 우울한 세상이라지만, 남의 불행에도 마음아파 하지 않는 마음씀씀이를 곳곳에서 보게 되니 안 그래도 신산한 마음이 더 씁쓸해진다.

다행히 노사 합의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평택에서는 수백여 명의 쌍용차 노조원들이 토끼몰이식 경찰의 진압작전에 부러지고 까지고 찢어지는 고통을 당했다. 사측과 경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자칫 용산 참사가 재현될 가능성까지 거론됐었다.

하지만 노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폭력 그 이상의 적개심이었다. 몇 개월째 급여도 받지 못하고, 일도 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때 같은 생산라인에서 땀 흘려 일했던 동지들이 아닌가.

죽창에 쇠파이프를 들고 볼트와 너트를 서로 쏴대며 ‘전쟁’하듯 싸웠지만, 이제는 화를 내려놓아야 할 때다. 그래야 미래가 보장된다. 되짚어보면 눈앞의 적을 풀어주고 정작 힘을 합쳐야 할 이들끼리 싸운 셈이다. 진짜 적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55년간 영속해온 기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상하이 차에 판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해고만은 피해달라는 농성자들을 범법자로 취급해 전쟁하듯 진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아니었더라도 용산과 평택에서 이처럼 극한 대립이 일어났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어렵고 힘든 이들을 보듬는 관용과 포용이 이 정부에게는 없다. 법과 원칙으로 무장한 불도저 정신만이 그득하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인 셈이다.

쌍용차 사태와 같이 무뇌아 식으로 몰아붙이는 이명박 정부가 약자들을 한데로 자꾸 내몬다면,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이들이 피를 흘리면서라도 채울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힘이요, 산자들의 세상이다. 외국 공포영화보다 ‘전설의 고향’이 무서운 것은 식스센스(The six sense), 즉 육감을 건드리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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