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여당의 법안 직권상정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한 뒤 국회를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최근 정국을 휩쓸고 있는 미디어법 처리 얘기가 아니다. 17대 국회 시절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당시 여당)의 사학법 직권상정 처리에 반대해 장외투쟁에 나섰을 때다.
물론 한나라당은 3달 만에 국회로 돌아오긴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학법 꼬투리잡기, 예산정국 발목잡기, 민생법안 외면은 이어졌다.
급변하는 현대사회는 1초가 지나도 묵은 역사다. 하지만 국회는 4년 전 얘기가 전혀 낯설지 않다.
오죽하면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몇 년 전 정치기사에서 여야 간판과 법안명만 바꾸면 5분 만에 따끈따끈한 최신기사를 생산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이 상태서 나오는 “민생의 바다에 빠져 보자”는 한나라당의 외침은 ‘정치쇼’라는 비판을 넘어 처량하기까지 하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수차례 여론조사에서도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미디어법 처리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여당의 주요 의무인 민생법안 처리도 마찬가지다. 논의한지 1년여가 돼가는 비정규직법을 비롯해 공무원연금법, 대부업법, 주택법(분양가상한제 폐지) 등 ‘민생’이라는 타이틀이 들어간 법안에는 거미줄이 쳐졌다.
그럼에도 8월 하한기를 맞아 휴가는 다 챙기면서 관련법 공청회 등을 연다는 얘기는 듣기 힘들다.
18대 국회 개원 뒤 한나라당이 처리한 주요법안이라고 해봐야 미디어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처리했다는 결과가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이 민주당의 장외투쟁 비판에만 혈안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일까.
한심하기는 민주당도 별반 차이 없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맞아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논의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왔다.
민주당의 미디어법 무효 거리홍보전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한 서울시민은 “미디어법을 무효로 하면 경제가 살아나느냐”고 대뜸 묻는다.
민심이 이렇게 싸늘한데 “장외투쟁은 10월 재보선을 겨냥한 멍석깔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지사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몇 해가 지나도 국회 시계추는 이처럼 그대로인데 국민들은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까.
아주경제=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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