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갑판'에서 몸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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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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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티그룹·GE, 전임자 유산 털어내기 주목 FT, "성공 관건은 핵심 가치 지키기"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석유 시추선이 불길에 휩싸였다. 배 위에 그대로 남아있으면 타 죽을 게 뻔하다. 배에서 뛰어내려도 신속하게 구조되지 않는 한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른바 '불타는 갑판(burning platform)' 이론이다.

불타는 갑판 위에 서 있기는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기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동안 추진해온 전략을 고수할 지, 뒤엎을 지를 두고 갈등에 빠진다. 물론 많은 기업가들은 변신을 택한다. 어차피 죽을 바엔 몸부림이라도 쳐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변신의 결과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일례로 1990년대 IBM의 경영권을 손에 쥔 루 거스트너는 하드웨어 부문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부문에 집중, 위기에 빠진 IBM을 수렁에서 건져냈다.

반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했던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는 유가 급등으로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수모를 겪었다. 잭 웰치 역시 제너럴일렉트릭(GE)을 이끌던 지난 1986년 월가 투자은행 키더피바디를 인수했지만 문화충돌과 경영 실수로 7년 뒤에 되팔아야 했다.

문제는 변신 수위다. 특히 전임자의 업적이 뛰어난 경우, 이들의 '유산'을 포기하는 것은 기업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는 꼴이 돼 부담이 만만치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극단적인 변신이 실패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기업의 핵심 가치를 보호하고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금융업과 제조업을 대표하는 씨티그룹과 GE다. 비크램 팬디트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와 제프리 이멜트 GE CEO는 전임자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털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팬디트는 전임자인 샌디 웨일이 비용을 크게 부풀리고 기업 덩치를 과도하게 키워 관료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낸 게 화근이라고 지적한다. 팬디트에게 금융위기는 이런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신문은 팬디트가 기존 씨티그룹의 핵심 부문은 '씨티코프(Citicorp)'라는 이름으로 묶어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웨일이 합병을 통해 흡수한 비핵심 부문은 '씨티홀딩스(Citi Holdings)'로 분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팬디트에게 핵심 부문이란 씨티그룹의 모태가 된 보험사 트라벨러스(Travellers)와 투자은행 부문으로 제한된다. 그는 웨일이 덩치를 키우기 위해 끌어모은 소비자 금융 부문을 떼어내고 씨티를 상업은행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멜트 역시 잭 웰치 전 회장의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GE가 금융 부문인 GE캐피털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위기 이전에 이미 보험 부문을 매각한 이멜트는 2000년 전체 수익의 40%에 달했던 GE캐피털의 비중을 최근 23%로 낮췄다. 아울러 그는 '녹색' 제품과 헬스케어, 인프라 설비 등 순수 제조업 분야로 역량을 재집결하고 있다.

신문은 그러나 씨티나 GE처럼 위기를 통해 돋보이는 변신을 꿰할 수도 있지만 위기에 이뤄지는 변신이 더 효율적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가 3000명의 기업 임원을 상대로 조사한 바로는 위기 속의 변신은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결국 방향을 잘못 타 실패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기업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핵심 부문을 강화하지 않고 인력과 비용을 전면 감축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의 대럴 리그비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핵심 사업 부문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일"이라며 "위기시에 기업은 비중이 높은 시장과 소비자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이스트만코닥을 꼽았다. 지난 2005년 이스트만코닥 CEO에 오른 안토니오 페레즈는 불타는 갑판 한 가운데 섰다. 카메라 필름에 주력하고 있던 코닥에게 디지털카메라의 확산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페레즈는 결국 갑판 위에서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핵심 사업 부문을 필름에서 프린터로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코닥 주가는 3분기 이상 추락했다. 투자자들 사이에 코닥이 디지털 혁명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된 결과다. 코닥은 최근 대표 상품인 컬러 필름 코다크롬(Kodachrome)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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