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셔 방정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적정금리는 신만이 안다'라는 말이 자금시장에 공공연히 떠돌만큼 금리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적정 수준의 금리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 공식이 바로 피셔 방정식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수상한 시국에 머리 아픈 얘기를 해보면,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 교수는 명목이자율은 실질이자율에 예상되는 인플레이션을 더한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통화량이 총생산의 화폐가치를 결정한다는 화폐수량설의 대표주자입니다.
실질이자율이란 자본을 들여 어느 정도로 산출할 수 있느냐를 의미하는 '자본의 한계효율'을 뜻합니다. 보통은 국내총생산(GDP)을 사용하지요.
예를 들어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 0.2%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예상치 2.5%를 피셔 방정식에 넣어보면 적정금리는 2%대 중후반이 나옵니다.
현행 기준금리가 2.00%라는 것을 감안하면 피셔 방정식에 따른 적정금리보다 낮은 셈이네요.
물론 금리의 종류와 대용변수 등 피셔 방정식의 논리적 허점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있습니다. 너무 넓은 오차범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피셔 방정식을 사용하니까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금리의 적정수준을 참 쉽게 구할 수 있네요.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다릅니다. 한국은행은 11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습니다. 이로써 6개월 연속 금리를 유지한 셈이 됐습니다.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부동산시장의 버블을 우려해 대대적인 주택담보대출 억제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물가 부담이 크지는 않다지만 일부 채소 가격은 두세 배로 치솟고 있습니다.
금리를 올리자니 경제가 울고, 그냥 두자니 들썩이는 물가가 걱정입니다.
한은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회복의 싹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섣부른 금리인상은 이웃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악몽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고용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금리인상에 대한 논의는 3분기 경제상황을 확인한 뒤 4분기에나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행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며 출구전략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지만 앞으로 주요 선진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우리나라도 가만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한때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그는 중앙은행을 "무르익은 파티에서 술잔을 치워 버리는 귀찮은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두가 성장을 얘기할 때 물가를 걱정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중앙은행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버블을 논하기보다는 섣부른 경기회복 기대를 경계해야 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린스펀의 말처럼 한은이 말 그대로의 '귀찮은 존재'가 될지 아니면 정확한 예측으로 통화정책을 수립해 경기회복과 함께 물가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본분을 지킬 수 있을지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입니다.
금융위기가 끝나가고 경기회복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지만 한은의 고민은 앞으로 깊어질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중앙은행의 어깨는 언제나 무거운 것 같습니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