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현정은 현대아산 그룹의 회장이 방북길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면서 남북관계의 해빙무드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미 행정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인도적 차원의 개인적 방문”이었고, “북한이 핵을 포기 하지 않는 한 과거와 달라진 것은 없다”고 밝혀, 북미관계 개선과는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는 6자회자 회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당사국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외교적 차원의 조치라고 본다.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주도하는 입장에서도 유연한 자세로 자국민 보호라는 가치를 실현한 미국의 외교를 본받아 원칙에 얽매어 가치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고 우선 실현 가능한 문제로부터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는 클린턴 대통령과 두 여기자의 귀환 이틀 후에야 방북 전 필요한 사전조율이 있었다고 밝히면서 클린턴의 방북에도 대북정책의 기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방북 후폭풍의 차단에만 주력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우리 정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미 북미간의 대화는 시작되었고, 동시에 우리 정부의 소외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미간의 대화는 시작되면 예상외로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 정부는 시급히 남북관계를 개선하지 못할 경우, 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회담 테이블에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경수로 건설 비용의 70%(당시 46억불)를 부담해야만 했던 과거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른 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에 알고도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시급히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하며, 그 핵심은 북한의 일방적 굴종만을 강요한 정책으로서 아무런 성과도 실효성도 없음이 검증된 『비핵ㆍ개방ㆍ3000』정책의 폐기이다. 또한, 북한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우리 정부에게 이행의무가 있으며 UN과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있는 6.15와 10.4 남북정상선언의 무조건 이행을 천명해야 한다. 그동안 수차례 대북정책기조 전환을 촉구했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지금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자존심 던지고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이번 8.15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민족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추석에는 금강산 면회소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 현정은 회장의 방북으로 개성공단 근로자 유 모씨 문제와 연안호 문제의 해결이 조심스레 기대되지만, 만약에 풀리지 않더라도 이들의 송환 문제를 비롯한 이산가족 상봉, 국군포로ㆍ납북자 문제, 쌀ㆍ비료 인도적 지원,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사업의 활성화 등 인도적인 문제들을 선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통일부 이산가족센터에 상봉을 신청한 12만7천명의 이산가족 중 고령화로 인해 4만 여명이 사망하고, 8만7천여 이산가족은 지금 이 시간에도 기약 없는 가족상봉의 꿈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또한, 상시 상봉을 전제로 건설했던 금강산 면회소는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상봉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정부는 이념의 벽에 가로 막힌 정치ㆍ군사적 문제에 집착하기 보다는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인도적 지원의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는 것으로부터 남북관계 개선의 대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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