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의 고삐를 풀면 고래도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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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14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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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할 일이 많다. 불황 속에서는 살아남는 게 최우선 과제지만 언젠가 찾아 올 호황에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기업가라고 만능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비단 기업가뿐 아니다. 한 분야에서 역량을 쌓아온 베테랑 임원들도 급변하는 경영환경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부친다.

이 때 전문가들은 위로 집중된 의사결정권을 아래로 확대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소매 영업 중심의 기업이라면 고객과의 접촉면이 넓은 직원들의 재량권이 넓어질 수록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영학자 개리 해멀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로그인 '개리 해멀의 매니지먼트2.0'에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려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직원들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풀고 이들에게 더 많은 의사결정권을 줘야 한다"며 뱅크오브뉴질랜드(BNZ)를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BNZ는 현재 뉴질랜드 전역에 180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지점의 소매 금융 영업시간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오클랜드 지역의 타카푸나시 지점은 평일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리고 일요일 오전에도 고객을 받는다. 또 사우스랜드의 스키 리조트 근처에 있는 한 지점은 스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오후 늦게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지난 2007년 6월 크리스 베일리스 소매금융 이사가 남부지역의 크라이스터처치의 영업점에 근무시간에 대한 재량권을 주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지점은 전사적으로 진행한 직원 트레이닝 프로그램 때문에 화ㆍ수요일은 평일보다 30분 늦게 문을 열었다. 때문에 화ㆍ수요일에는 개점 전부터 은행 앞에 고객들의 줄이 이어졌다. 이를 목격한 베일리스는 해당 지점장에게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다음날 베일리스는 뉴질랜드 전역의 지점장들로부터 영업시간에 대한 재량권을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하지만 베일리스는 당장 전국 지점의 영업 시간을 서로 다르게 할 수는 없었다. 은행업계에서 영업시간은 정확성과 신뢰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난관에 봉착한 베일리스는 블레어 베로논 마케팅 이사와 머리를 맞댔다. 베르논은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데 적극 찬성했다. 그는 "영업시간을 지역 특성에 맞추면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 경험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르논은 영업시간 재량권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자체 영업 전략을 짤 수 있는 권한도 지점에 넘겼다. 그 결과 6개월 후 180개의 지점 중 무려 171곳이 영업시간을 바꿨다. 

해멀은 영업시간이 바뀌면서 직원들의 근무 태도도 개선돼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지점별로 주어지면서 그야말로 밑에서부터 풀뿌리 혁신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이동식 BNZ지점'까지 탄생했다. 이동식 트레일러에 은행 창구를 그대로 옮겨 놓고 새해 첫날부터 소비자를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베일리스는 "전사적 차원에서 이런 혁신을 요구했다면 직원들은 아마 노동 착취라며 반대했을 것"이라며 "직원들이 상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다양한 영업전략을 짤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 성과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해멀은 BNZ가 직원들에게 의사결정권을 고루 나눠주면서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인센티브제와 탈집중화된 정보시스템로 꼽았다.

BNZ는 지점마다 개인별 인센티브제를 실시했다. 보통 개별 지점의 소매금융팀은 4~7명으로 매니저, 창구직원, 영업직원 등으로 구성된다. 매니저들은 영업 목표량을 초과 달성할 때마다 기본급의 10%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는다. 또 수익률을 초과 달성할 때도 해당 수익률의 10%를 인센티브로 챙길 수 있다. 창구 및 영업직원도 같은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BNZ 직원들은 각 지점의 주인처럼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해멀은 설명했다.

은행 전체의 정보를 탈집중화시킨 것도 주효했다. 기존에 임원급에게만 공개했던 지점별 손익보고서를 각 지점의 매니저들에게도 제공한 것이다. 해멀은 "정보의 탈집중화로  매니저들이 금융상품과 서비스별로 지점의 수익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매니저들이 주어진 의사결정권을 지역별로 활용할 수 있는 데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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