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처리율 최악...부실·폭력 국회로 전락
삼임위 중심 국회 운영 등 정기국회 대비해야
미디어법 강행처리 후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지속되면서 9월 정기국회도 파행으로 얼룩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한 18대 국회는 각종 불명예 기록을 하나둘 갈아치우고 있다. 최장기간 국회의장 미선출(42일), 본회의장 점거(22일) 등이다. 국회 파행일수도 16일까지 161일을 기록, 같은 기간 15대 국회(256일)에 이어 역대 2위다.
◆법안 처리율 최악…민생의 무덤
이처럼 정쟁에 몰두한 이번 국회는 민생현안 처리에 한계를 드러냈다. 지난해 개원 이래 현재까지 법안 발의는 5420건에 달한다. 17대 국회의 같은 기간 2405건, 16대 국회 899건에 비해 폭발적 증가수치다.
문제는 얼마나 법안이 처리됐느냐다. 법안 처리율(가결.부결.폐기.철회)을 보면 현재까지 이번 국회의 법안처리율은 31.0%다. 반면 같은 기간 17대 국회 77.8%, 16대 국회는 45.2% 에 크게 못 미친다. 잦은 정쟁으로 국회가 공전되면서 법안을 제출만 해놓고 심의나 의결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했던 임태희 의원은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 중 지역 의중 반영이나 이해관계에 따른 법안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원들이 무더기로 내놓은 법안 가운데 현실성이 부족하거나 문구만 조금 바꿔 재탕하는 것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민생법안들도 잠들어있다. 하루빨리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비정규직법 개정 등이 전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현인택 인하대 교수는 비정규직법 문제와 관련, “정치권이 직무유기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부실·폭력’ 오명 국회로 전락
부실 국회의 흔적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비상설 특별위원회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것이대표적 예다. 현재까지 특위 활동비로 지출한 예산은 13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제대로된 회의조차 열지 않는 특위가 많다는 게 문제다.
3월 구성된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는 9월 말이 활동 시한이지만 회의가 딱 한 번 열렸다. 지난해 8월 만들어진 중소기업경쟁력강화특위도 9월 말이 활동 시한인데 지금까지 세 차례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규제개혁특위(3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위(4회), 남북관계발전특위(4회) 등도 활동이 미미하다.
폭력국회도 문제다. 지난해 말 외통위에서 FTA비준안을 상정하는 과정에 해머와 소화기가 난무했고, 올해 초 소위 ‘MB악법’을 둘러싸고 국회 본회의실과 로텐더 홀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도 국회의 폭력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2월 임시회 당시 민주당은 미디어법 저지를 위해 문방위 회의장을 점거했고, 한나라당은 로텐더홀을 점거하면서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 없는 정치력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달 22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여야는 본회의장 진입을 놓고 충돌하면서 폭력사태가 빚어졌다.
국회 파행일수도 최악이다. 이번 국회가 반환점도 돌기 전에 이전 국회의 파행일수를 훌쩍 뛰어넘었다. 현재까지 파행일수는 161일이다. 이는 14대 133일, 13대 103일, 12대 28일 등 국회 4년간 파행일수보다 훨씬 높다.
15대 국회 파행일수인 256일보단 낮지만 아직 임기가 2년도 넘게 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행국회 1위는 따논 당상일 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제언
이번 국회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시사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국회의원 개인의 의정활동 준비와 열의는 이전 국회보다 향상됐다”며 “하지만 정당 간 대결이 의원의 의욕을 제약하고 성과를 가로막는 요인이 됐다”고 혹평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회 운영에 대한 비판을 거대 여당에게 겨냥했다. 유 박사는 “여대 야소로 시작했지만 여당이 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정치력 부족으로 무기력한 운영을 했다”고 비판했다.
고원 상지대 교수는 “정부여당은 약자가 아닌 강자이기 때문에 일방적 국정운영 스타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정국의 열쇠를 여권이 쥐고 있는 만큼 야권과 대화를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9월 정기국회만큼은 정상화돼야 한다는 촉구가 이어졌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나라당은 정치력이 부재한데다 청와대 등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고, 민주당은 지지기반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며 “9월 정기국회 전에 여당이 정국 정상화에 주력하고,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현 집권세력은 대화와 합의나 사회적 통합에 소홀했다”며 “여야는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렇다면 국회의 근본적 개혁을 위한 중점 과제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민본21 소속으로 정치개혁분야 팀장을 맡고 있는 권영진 의원은 “국회를 정당의 지배에서 독립시켜 의원 개인의 자율성을 신장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 상시화 △원내지도부 협의 대신 상임위 중심의 국회운영 △법안의 자동상정 △소수당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법안 조정 절차와 필리버스터 제도(의사진행방해)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 교수는 “그간 20년동안 매회 국회 초선의원이 40% 이상 차지할 정도로 국회가 바뀌었지만 좋아진 것은 없었다”며 “투입 요소(의원) 보단 의회 운영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상임위 중심 국회가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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