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 관광 재개 등 5개항 합의 이끌어내
17일 오후 2시 30분. 파주 도라산 출입국사무소. 수십명의 취재진이 기다리는 기자회견장에 붉은색 재킷 차림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들어섰다. 그동안 가슴 졸였던 순간들이 모조리 씻긴 듯 밝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관련기사 3면)
현 회장에게 지난 1년은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남편 정몽헌 회장의 타계로 그룹 총수에 오른 2003년 이후 시숙들의 경영권 위협 등 수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근로자 억류사건, 그룹 유동성 위기 등 일련의 악재들은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실제로 현대아산은 금강산 및 개성관광 중단으로 지난 1년 동안 1400억원에 달하는 매출 손실을 입었다. 직원 수도 1084명에서 411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으며 금강산사업소는 6개팀 가운데 4개팀이 해체됐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글로벌경제 불황까지 겹치는 바람에 주력사들의 매출이 격감하면서
현대증권 등 계열사 매각설까지 떠도는 등 최근까지 현대그룹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암울’ 그 자체였다.
시아버지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남편이 남겨주고 간 대북사업. 현 회장에게는 수익성이 없다고 버릴 수도, 그렇다고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기에는 너무나도 위험 부담이 큰 숙명이다.
그러나 휴일인 지난 16일 저녁 들려온 현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소식은 최악으로 치닫던 현대그룹의 대북사업과 경색된 남북관계가 동시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17일 가진 방북 기자회견에서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금강산관공 재개 및 관광객 신변보장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해제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관광 개시 △올 추석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과 현대아산은 이른 시간 안에 금강산 및 개성관광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두산관광 사업 추진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현 회장의 대북사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이 같은 성과를 이끌어 냈다"며 “이로 인해 대북관광산업 중단으로 인한 현대아산 위기는 돌파구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 회장은 이번 방북을 통해서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숨통을 틔웠다.
일단 현 회장은 남북관계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석방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뿐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원상회복 등 굵직한 현안에도 합의했다.
발표된 공동보도문에 따르면 남북은 구체적인 일정과 상봉 규모 등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추석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남측 인원들의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과 북측지역 체류 원상회복에도 합의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현정은 회장 일행을 면담하고 현 회장의 청원을 모두 풀어주셨다”라는 문구가 공동보도문 실려 있어, 이번 합의가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에 따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합의에는 북한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담겨 있는 만큼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다만 북한 2차 핵실험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북한이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하는 기존 대북정책의 원칙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 쌀·비료 지원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현대그룹과 북측의 합의의 성공여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과 이번 합의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주경제= 김병용 기자 ironman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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