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17일 황영기 전 우리금융 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파생상품 손실 등과 관련,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우리금융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이달 중 최고 의결 기구인 예보위원회를 열어 우리은행이 지난해 4분기에 경영이행약정(MOU)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해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예정이다.
금감원과 예보의 징계를 받더라도 황 회장이 현직을 유지하는 데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최고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게 돼 KB금융지주를 이끌어가는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임기가 끝난 뒤 발생한 손실에 대해 최초의 투자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의 투자 손실을 방관한 정부의 감독 소홀 책임은 없는지 등도 문제 삼고 있어 징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오는 9월 3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황 회장에 대한 징계를 확정할 예정이다.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제재의 경우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금감원의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주의적 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순으로, 직무정지를 받으면 앞으로 4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자격을 박탈당한다.
감독당국이 중징계 방침을 정한 것은 황 회장이 우리은행 재임 시절 미 부채담보부증권(CDO)과 같은 파생상품 투자로 엄청난 손실을 낸 데 따른 문책성으로 풀이된다. 공적자금 12조2천억 원이 투입된 우리은행의 손실은 국민 혈세의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은 금융위기 여파로 황 전 회장 시절 이뤄진 CDO와 신용디폴트스와프(CDS)에 대한 총 투자금 15억8천만 달러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1조6천200억 원을 손실처리했으며 이에 따라 작년 4분기에 적자를 냈다.
예보도 이달 26일께 이러한 이유를 들어 황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는 황 회장이 당시 무리하게 자산을 늘리기 위해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저금리로 대출하는 등 은행의 장기적 수익기반을 훼손한 책임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KB금융지주 측은 공식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당황해 하고 있다.
KB지주 관계자는 "아직 제재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달 열리는 제재심의위원회 결과를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주 관계자는 황 회장 거취와 관련, "KB금융 회장 취임 전 업무에 관한 사항이어서 황 회장의 임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황 회장은 KB금융지주 출범 이후 처음으로 최근 아시아와 유럽지역에서 해외 기업설명회를 갖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취임 이후 '금융기관 간 대등합병론'과 같은 굵직굵직한 화두를 던지며 금융권 이슈를 주도했던 그는 갑작스럽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지난 1년간 숨죽이며 보내야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잦아들자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는가 하면 증권사 인수합병(M&A)에도 관심을 보이는 등 타고난 '검투사 기질'을 드러내며 경영의 고삐를 당기는 중이었다.
이 와중에 감독당국의 잇단 제재 결정은 그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황 회장이 징계를 받더라도 현직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사회적 평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은 부담이 된다.
고객의 예금을 먹고 사는 은행의 경우 '사회적 평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부실의 원인제공자'라는 멍에가 있는 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직무정지 제재를 받더라도 법적으로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투자책임이 있다는 감독 당국의 판단에 따라 중징계를 받은 사람이 직책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의 징계를 놓고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파생상품 투자가 재임 시절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퇴임 이후 큰 손실이 났다는 이유로 사후 징계를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또 예보의 경우 이미 여러 차례 심의에서 징계대상에 황 회장을 제외해놓고 이제야 징계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황 회장은 우리금융 시절 사사건건 예보 등과 마찰을 빚었다.
공적자금 투입 기관이 엄청난 손실을 낼 때까지 정부가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도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계 한 고위 임사는 "우리은행이 당시 투자했던 상품은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조기 상환 등의 장치가 없었고 황 회장이 현직에 있을 당시에는 손실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중징계를 내리는 게 다소 과도한 측면도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는 "손실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문제로 중징계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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