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초마다 5벌씩 한세실업의 옷이 판매됩니다."
베트남 호찌민 서북쪽 구찌 공단에 자리 잡은 의류수출기업 한세실업 공장 사무실에는 세계 의류시장에서 이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리는 다양한 광고홍보물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 17일 현지 공장에서 만난 김철호 한세실업 베트남 법인장은 "한국 섬유기업들은 몽골 유목민들이 풀을 찾아 사막을 건너듯 새로운 활로를 찾아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건너왔다"면서 "한세실업 베트남 공장은 지난해 3억 달러어치 의류를 수출했고, 올해는 수출액 3억4천만 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섬유산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를 이끈 효자산업이었다. 우리나라가 1977년 달성한 100만 달러 수출액 가운데 섬유부문이 31억 달러를 차지했고, 1987년에는 단일업종으로는 처음으로 수출 100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호황을 누리던 국내 섬유산업은 그러나 산업의 고도화에 밀려 하나 둘 공장문을 닫기 시작했다. 저임금으로 유지되던 노동집약적 산업이 국내에서 더이상 발붙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철호 법인장은 "한세실업은 1990년대 말 이후 사이판, 니카라과 등에서 잇따라 공장을 열었고, 2001년 베트남 호찌민에 진출했다"면서 "호찌민에는 현재 1만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가운데 8개 니트 공장에서 102라인, 3개 우븐(직물) 공장에서 34라인이 가동돼 매월 니트 430만 장, 우븐 40만 장을 생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세실업은 지난해 11월 호찌민 인근 타이닌(Tay Ninh)에 72개 생산라인을 갖춘 제2공장을 가동했으며, 제2공장의 현지 고용인원만 현재 3천여 명에 이른다.
주문생산방식으로 미국 월마트 등에 대량 공급되는 한세실업 생산 의류들은 미국인 5명당 1명이 입는 것으로 추산될 만큼 세계 의류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조이너스, 메이폴 등의 상표로 잘 알려진 세아상역은 2005년 호찌민 인근 송탄공단에 72개 생산라인을 갖춘 공장을 가동해 매월 140만 벌에 이르는 재킷, 원피스, 가운, 니트, 팬츠&셔츠, 아동복 등을 생산해 대형 유통업체 타깃(Target)이나 월마트, 세계적 의류브랜드 갭, 올드네이비 등에 공급한다.
베트남 공장은 현지 고용인원이 4천6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지만 세아상역 전체 생산 비중의 12%를 차지할 뿐이다. 지난해 국내 패션업체 인디에프(구 나산)를 인수했던 세아상역은 작년 매출이 1조3천억 원에 이른다.
세아상역은 과테말라, 니카라과,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 17개 현지법인과 20개 공장을 가동 중이다. 현지 공장의 직원이 모두 2만5천여 명에 이르고, 각 진출국가의 협력업체 임직원까지 포함하면 8개국에 약 5만여 명이 근무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문준용 세아상역 베트남 법인장은 "1986년 회사 설립 이후 2년을 제외하면 지난 23년간 매년 평균 27%의 매출 신장을 이루어냈다"면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올해 수출목표로 삼은 9억2천만 달러는 초과 달성할 것으로 보이며, 내년에는 10억 달러 수출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섬유기업들은 해외진출을 통해 제2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들 앞에 놓인 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던 한국기업 노블랜드에서 독립해 2006년부터 71개 생산라인을 갖춘 공장을 가동 중인 누리안의 김기정 법인장은 "최근 대만이나 싱가포르 업체 등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사태가 잇따랐다"면서 "저임금을 바라고 베트남에 진출하는 것도 이제 한계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정 법인장은 "점심을 제공하는 것이 의무사항이 아닌데도 음식을 빌미로 데모를 벌이는 일도 자주 생기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사태에 대해 베트남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아 불안을 느끼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봉제공장 직원들이 전자나 중공업 분야로 이직하거나 고향 근처에 새로 생긴 공장으로 옮기는 사례가 많아 갈수록 인력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임금 체제가 차츰 무너지고, 노동조건 개선 등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베트남 진출 기업들은 새로운 활로를 마련하고자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기정 누리안 법인장은 "베트남 공장의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원단 현지화를 통해 물류비용을 줄이고, 생산라인을 좀 더 전문화해 적은 인원으로 다품종소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준용 세아상역 법인장은 "베트남인들의 손기술이 좋아 다른 지역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공정의 제품을 이곳에서 만들 수 있다"면서 "내년 9월을 목표로 인도네시아에 원단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원단과 부자재의 현지 공급 등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철호 한세실업 법인장은 "경쟁력을 갖추고 업종을 계속 유지하려면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제품에 곧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지난해 미국 뉴욕에 개설한 디자인센터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발굴하고, 비즈니스 역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활로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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