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재익 한국건설산업 연구위원 |
개선안이 나오게 된 것은 보증보험시장의 비효율성 해소를 위해서는 경쟁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 보증시장이 독점체제로 운영됨에 따라 실적에 근거한 손해율이 보험료 조정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높은 보험료 수준이 유지될 뿐만 아니라 보증보험시장의 성장도 미미하다는 근거였다.
이론적으로 경쟁체제의 우월한 효율성은 단순하게 시장참여자가 다수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참여자가 가격 수용자로서 행동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가격수용자가 아닌 일부 손해보험사의 참여로는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증보험시장 개방 관련 논의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항들이 있다. 먼저 보증소비자의 수요충족은 서울보증의 독점적인 보증상품 공급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보증보험시장의 상당 부분에서 자체 보증수요 충족을 위해 동업자들이 상호 출자해 설립한 업종별 공제조합(건설공제조합, 전문건설공제조합 등)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위해 정부가 출연한 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이 서울보증과 경쟁체계를 구축하면서 보증소비자의 수요충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보증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보증기관이 공제조합과 보증기금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보증소비자의 수요충족이 은행이나 보험회사 등 시장원리에 충실한 금융기관을 통해 이뤄지기 어려웠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증소비자는 은행이나 보험사로부터 신용공여를 쉽게 받을 수 없어 스스로 공제조합을 결성하거나 정부가 나서서 보증기금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보증보험시장이 재편되면 공제조합이나 보증기금의 역할이 제한되어 상당수 중소기업의 보증수요가 충족될 수 없을 뿐더러 보증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중소기업의 경제활동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부 보증보험상품의 경우 서울보증이 유일한 공급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보증이 보증보험시장에 존재하는 유일한 전업보증사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경기변동에 취약한 보증기관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외환위기 때 보증보험산업의 정상화 방안으로서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의 합병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보증보험시장의 개방 이후 경기변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부 보증기관의 부실화와 이를 처리하는데 소요될 사회적 비용에 대한 고려도 보증보험시장 개방 논의과정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보증보험시장에서 경쟁체계를 구축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지난 1980년대 한국보증보험의 설립을 통해 구체화됐으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좌초된 바 있다. 두 보증기관을 합병하여 보증보험산업을 정상화하는 데는 무려 1조365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일부 손해보험사의 보증보험시장 진입을 허용한다고 하여 시장경쟁이 활성화되고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시장개방 이후 얼마든지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오히려 서울보증과 공제조합 그리고 신용보증기금들이 경쟁하는 현행 보증보험시장의 제도적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경제의 안정적인 회생과 발전을 위해 더욱 유리할 수 있다.
현재처럼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이뤄지는 보증보험시장 개방논의가 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시장개방만이 시장경쟁 활성화와 경제성장의 해법은 아니다.
<빈재익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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