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前대통령서거) "DJ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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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2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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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세 아들 홍일, 홍업, 홍걸씨는 'DJ의 아들'이란 이유로 정치적 억압을 받으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장남 홍일(51)씨는 아버지의 정치적인 굴곡을 빼닮았다. 아버지가 대선에 출마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맞섰던 1971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었고 1980년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지난2001년 자전에세이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를 통해 "처음 24시간은 말 한 마디 할 사이도 없이 얻어맞기만 했고, 그 다음부터는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며 "나중엔 견딜 수 없어 책상 위에 올라가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동안 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지 않고 목만 다쳤다.

1987년 정치적 사면복권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정권의 감시를 받았다. 친구나 외부인사를 만나면 기관원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를 감시해 가까운 친구들조차 그를 만나기 꺼려할 정도였다. 그는 "DJ의 아들은 명예라기보다는 멍에요, 행복이라기보다는 불행이었다"고 토로했다.

차남 홍업(49)씨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형과 함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후 맏형과 함께 정치권 주변에서 아버지를 도왔다. 김 전 대통령 망명 시절엔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설립했고 광고이벤트 회사 '밝은 세상'을 운영하면서 선거 홍보 책임을 맡아 아버지의 당선에 공을 세웠다.

3남 홍걸(46)씨는 일찍이 미국에서 머물며 '민주투사'였던 두 형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고교생 때인 1980년 아버지의 구속과 사형언도를 지켜봐야 하는 등 어릴 적부터 마음고생을 해야했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후에도 'DJ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세 아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제약을 받았다. 이는 아버지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권노갑 전 의원의 양보로 15대 때 목포·무안갑에서 금배지를 단 홍일씨는 재선의원 때인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수사 과정에서 돈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또 홍업과 홍걸씨는 2002년 각각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아버지의 재임기간에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지난시절 고문으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홍일씨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몸이 불편한 모습으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8대 무안·신안에 출마했다 낙선한 홍업씨는 가끔 지역구에 방문하면서 정치적 재기를 모색중이다.

홍걸씨는 중국에 머물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모색하고 있다.

아주경제= 이나연 기자 n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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