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산업기술 유출 못 막으면 기업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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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2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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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호 산업에디터 겸 IT미디어부장

   
 
김병호 산업에디터 겸 IT미디어부장
- 산업기술 유출에 강력 대책 있어야 한다

첨단 산업기술의 유출이 위험수위에 달했다. 이대로 뒀다가는 국내 기업이 어렵게 개발한 산업기술이 외국 경쟁사에 언제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제 첨단 산업기술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개발된 기술을 지키는 게 더 시급한 문제가 됐다.
검찰은 이달 초 LG전자의 히트상품인 ‘휘센’ 에어컨에 이용되는 첨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던 일당을 검거했다. 벤처기업 P사의 전 대표 고모씨 등이 그 일당이다. 고씨는 지난해 4월 P사를 퇴사하면서 박막증착(ITO)ㆍ나노파우더(NAP)ㆍ금속표면처리(OPZ) 기술 등에 관한 자료를 빼돌려 중국에 회사를 차리기까지 했다.

검찰은 이들 기술이 중국 업체에 넘어갔다면 LG 측에 1천2백억원 상당의 피해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 하나로 인해 이 같은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은 기술 관리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기술 유출 시도는 사전에 적발되어 성공하지 못했다.
기술 유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유출 적발 건수는 모두 160건이나 된다. 예상 피해액은 자그마치 253조원이었다. 2008년에는 전년보다 31%가 늘어난 42건이 적발됐다.

이렇게 5년간 적발된 160건 가운데 85건, 53%가 중국으로 기술을 빼돌리려고 시도됐다. 국내 기술의 중국 유출은 정말 심각한 실정이다. 그런가하면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기술유출 피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청이 중국 길림성과 요녕성에 진출한 83개 우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5%가 산업기술 유출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이들 응답자의 86%는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투자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의 기술 유출도 무방비 상태지만 외국에 진출한 기업 역시 이 같은 범죄행위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1조원 규모의 기술유출 시도도 있었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은 2006년 1조원대 휴대전화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려던 삼성전자 연구원을 구속했다. 연구원 이모(35)씨는 최신 슬림형 휴대전화와 내장형 안테나 제작기술이 적용된 PCS 휴대전화의 회로도와 부품 배치도 15장을 출력한 뒤 몰래 회사 밖으로 빼돌리다가 적발됐다.
정부는 현재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를 통해 7개 분야 40개 핵심기술에 대한 기술유출 방지에 나서고 있다. 7개 분야는 전자ㆍ정보통신ㆍ철강ㆍ자동차 ㆍ조선ㆍ우주ㆍ원자력 등 국내 업체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품목들이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와 산업계, 사법당국의 공동보조가 있어야 한다.

기술유출은 주로 내부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정신교육을 강화해 회사의 기술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술은 다루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출할 수 있게 돼있다.
다음은 기술유출이 우려되는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기업이 M&A를 통해 기업을 인수 한 후 첨단 기술을 그대로 가져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M&A 해서 첨단 기술을 가져갔다는 비판을 받는 게 좋은 예다.

기술보호를 위한 전문 인력의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기업에서 수백억, 수천억 원을 들여 개발한 기술은 개별 연구원이나 실무자가 아닌 전문 인력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 우리 기업은 산업기술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핵심기술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아직 그런 의식이 부족한 상태다. 사법당국도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기술유출 사범에 대한 기소율이 고작 15% 정도라고 한다. 이 말은 기술을 유출한 사람 10명 가운데 1~2명만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는 기술유출을 막을 수 없다.

사법당국은 산업기술 유출자에 대해서는 신체적ㆍ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줘야 한다.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벌을 내려야 한다. 기존의 법이 약하면 법을 고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없다면 이 땅에서 기술유출을 막을 길이 없다.
기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산업계 어디에선가는 기술 유출을 시도하는 개인이나 조직이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첨단 기술,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상품과 관련된 기술,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지목된 기술을 빼내기 위해 별의 별 작전을 다 펼치고 있을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이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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