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도청 괴담이 돌고 있다. 80년대도 아니고 무슨 도청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를 비롯해 이른바 반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정보 당국이 통화 내용을 도청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최근 기자는 금융권 노조 고위 관계자와 통화하던 중 평소와 다른 그의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평소 점잖고 예의바르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경계섞인 목소리로 어디서 전화를 거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금융기관 기자실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고 답했지만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달라는 요청에 기자는 몇번을 다시 전화해야 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최근 정보 당국이 노조 관계자들과 반정부 인사들에 대해 도청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는 통화 상태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도청을 당하고 있으면 통화 상태가 불안하고 울림현상이 발생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지역 경찰서 정보과에서 자신에 대한 도청을 담당하고 있다며 최근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조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들은 도청 실태는 생각보다도 심각했다. 국정원이나 담당 정보관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도청을 진행하고 있고 위치추적까지 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자신 역시 최근 지방 일정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당국 관계자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어찌 보면 군사정부 시절에나 들을 법한 얘기다. 그러나 그는 정부 당국의 도청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촛불시위 등 반정부 행사가 많아진데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커지면서 정부의 도청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그를 비롯한 금융권 노조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정부 관계자가 아닌 이상 도청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 도청 괴담이 돌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단행했다. 그동안 쇠고기 파동과 종교 편향 논란으로 국민들이 등을 돌린 가운데 당내 갈등은 물론 당정청의 불협화음도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개각에서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를 발탁한 것은 당정청 간 신선한 소통 창구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총리 내정자로 선임한 것도 화합형 인사를 통한 충청권 민심잡기의 의중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은 이번 개각에 대해 국민통합과 화합의 의지를 천명했다며 국민 소통을 원활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소통이라는 단어와 도청은 어울리지 않는다. 도청 괴담으로도 알 수 있듯 정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여전히 단절과 강압이라는 단어를 배제하기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하수상한 시국에 금융권에 도청 루머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래저래 요지경인 세상이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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