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권교체)자민당 54년 영욕사…창당에서 몰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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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3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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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4년간 일본 정치를 좌우해 온 자민당 정권이 30일 총선에서 민주당에 참패하면서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보수연합이란 명목으로 합당해서 탄생한 자민당이 이후 54년간 계속된 이른바 '55년 체제'를 마감하고 야당이 된 것이다.

선진국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장기간의 권력독점 현상이 무너진 데는 국내외의 환경 변화 때문에 더는 자민당의 깃발로는 일본을 이끌 수 없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확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공과 경제성장이라는 명제가 최우선 과제였던 당시에 창당한 만큼 이제는 더는 존속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자민당은 창당 이래 10개월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집권당의 지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에 실패한 이후였다.
 
물론 당시도 제1당을 유지하긴 했지만, 자민당 장기 집권에 반발하는 야당들이 비(非)자민, 비공산 연립정권에 합의, 호소카와(細川)내각을 출범하면서 한때 야당이 돼야 했다.

하지만, 집권 경력이 없던 야당은 자중지란에 빠졌고, 수십 년간의 집권 경력이있는 자민당은 1995년 6월 일본사회당, 신당사키가케 등과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복귀했다.

당시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이치(村山富市) 의원이 총리에 취임했지만 1년 반 뒤에 자민당 소속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이 출범했다. 자민당 총리가 나온 것은 2년 반만이었다.

그러나 이미 이 즈음부터 자민당은 단독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는 등 생명력이 약화하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무소속 영입을 통해 중의원 과반수를 확보했던 자민당은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사회당에 참패하면서 무소속영입을 통해서도 과반수 확보가 어렵게 됐다.

1993년 한때 정권을 빼앗겼다가 일본사회당 등과의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정권장악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에도 자유당, 공명당과의 연립을 통해서 정권을 겨우 유지해왔다.

물론 2005년 중의원 선거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우정(郵政)민영화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개혁을 표방하면서 단독 과반수 확보는 물론 연립정당인 공명당을 합쳐서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는 3분의 2(320석) 이상인 327석을 획득하면서 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재임 5년5개월 동안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 심화, 농촌의 피폐화 등개혁의 후유증이 크게 두드러지면서 자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은 더욱 심해졌다.

여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의 무책임한 중도 퇴진, 뒤이어 취임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재의 귀족 지향적인 행동과 발언, 그리고 한자 오독 등의 일련의 행보가 민심 이반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야당' 자민당은 앞으로도 적지 않은 과제를 갖고 있다. 당장 9월 30일로 당 총재인 아소 총리의 임기가 만료되지만, 후임 총재 선출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후생노동상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그동안 참의원 의원이 당 총재를 맡은 적이 없다는 문제도 있고, 당내 일각에서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또 총재급의 고위 인사들의 상당수가 이번 총선에서 낙선하는 바람에 적임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야당 경험이 거의 전무한 만큼 국민의 압도적인지지 속에서 출범한 하토야마 정권과 맞설 강한 야당을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목소리가 있다.

◇주요 연표

▲1955년 11월 = 보수합동으로 자민당 창당.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총재 선출

▲1976년 6월 =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등 6명 탈당. 신자유클럽 구성(1986년 해산, 자민당에 합류)

▲1976년 12월 =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 실패. 보수계 인사 영입해 과반수 확보

▲1979년 10월 = 중의원선거에서 단독 과반수 실패. 보수계 인사 영입해 과반수확보

▲1984년 9월 = 자민당 본부 방화사건. 본부 건물 일부 소실

▲1989년 7월 = 참의원 선거에서 사회당에 대패. 처음으로 무소속 영입을 통해서도 과반수 확보 실패

▲1993년 6월 =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 등 중의원 의원 10명 탈당, 신당사키가케 창당(2002년 1월 해산)

▲ 하타(羽田)파 44명이 집단 탈당, 신생당 창당(1994년 12월 신진당 합류)

▲1993년 7월 =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 실패

▲1993년 8월 = 비(非)자민-비공산 연립정권인 호소카와(細川)내각 발족. 창당 이래 최초 야당 전락

▲1994년 6월 = 일본사회당, 신당사키가케 등과 연립정권 구성, 여당 복귀

▲1996년 1월 = 2년 반 만에 자민당 출신 총리 내각 출범(하시모토<橋本>내각)

▲1999년 1월 = 자유당과 연립정권(오부치<小淵>내각)

▲199년 10월 = 공명당과 연립정권(오부치 내각)

▲2005년 9월 = 중의원 선거에서 296석 획득, 공명당과 합쳐 327석으로 창당 이래 최초로 3분의 2(320석) 이상 압도적 다수 확보.

▲2006년 12월 = 우정민영화 반대파 11명 복당.

▲2007년 7월 =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패, 창당 이래 최초로 민주당에 이어 원내 2당

▲2009년 8월 =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패, 창당 이래 최초로 선거에 의해정권 내줌

아주경제= 인터넷뉴스팀 기자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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