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신념의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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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9-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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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경주대 교수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눈을 감은 순간은 벌써 역사가 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가슴과 머리에 지울 수없는 흔적을 남긴 거목이 쓰러져 별이 되었다. 아니 역사가 되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숱한 헌사는 아직은 평가가 아닌 추모와 회상을 담아 고인의 영면을 축원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추모와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늘 역사는 냉혹한 진실에 대한 평가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은 반세기 동안 중심에 서 있었다. 흔히들 박정희 대통령과 숙명의 정적이며. 이른바 3김 시대를 이끌어 온 선두마였다고 한다.

특히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한국정치를 끌어 온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애증의 반세기는 아마 세계정치사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가 될 것이다. 겨우 나라의 모습을 갖추어 가던 시절 사업가에서 정치가로 인생의 행로를 바꾼 고인은 이미 그 출발선에서 이미 기린아로 떠올라 거목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고인을 인고의 세월로 끌었고 끝내는 ‘인동초’란 이름을 붙여 주었던 것이다. 

 유독 올 해는 땅의 별들이 하늘의 별이 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그 시작을 알리는가 싶더니, 이어 아직은 샛별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늘별이 되었고 김대중 대통령마저 하늘 길을 가셨다. ‘드는 정은 몰라도 가는 정은 안다’고 했던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미운 정 고운 정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간 고인의 자리가 시리고 허전하다. 때로는 검투사의 모습으로 목숨을 건 투쟁의 정점에서, 때로는 한없이 자애로운 어른의 모습으로 기억 되는 고인은 이제 다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시간의 장막 뒤로 사라지는 것이다. 다만 고인의 아호가 말해주듯 한줄기 빛을 남기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초적인 힘은 신념과 신의에서 나온다. 신념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며, 신의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다. 보통사람과 달리 자신과 타인의 삶을 함께 아울러야 하는 정치인에게는 신념과 신의 모두가 소중하다. 다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신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에게서 신의는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자산이어서 늘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인은 때로는 신의의 의심을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고인에게 신의가 엷은 정치인이었다고 말하면 실례는 될지언정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러한 말들은 평범한 정치인을 말 할 때의 이야기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을 흔들림 없이 지켜 온 태산 같은 신념이 있었다. 민주와 평화라는 두 가지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무게가 그를 지켜왔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초석이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일순간의 신의를 넘어 역사에 큰 획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역사를 두려워하고 꿰뚫어 보는 신념의 정치인을 바란다. 목숨을 담보로 박정희 정권에 맞섰던 고인의 민주와 평화에 대한 신념은 경제발전, 근대화란 박대통령의 신념과 대결한 시대의 불화였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정치인의 신념이 무엇을 이끌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극명하게 보는 것이다. 시대와 불화하는 정치인의 신념은 때로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의 신념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장한 역사의 강에서 화해하는 것이다.

 이미 역사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나는 그의 모든 것을 세 치 혀와 한 자루의 붓으로 다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가슴에 새길 뿐이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한 사실이다. 현대사의 굽이굽이에서 뒤틀리고, 눌리고, 상처받은 우리는 고인에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자유와 민주 평화의 빚을 진 것이다. 이제 그것은 남은 자의 몫이 되었다. 당신께 돌려줄 순 없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이 나라의 내일인 것이다. 텔레비전 자료화면의 흑백영상처럼 명암이 엇갈리는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돌려주고 그 흔들림 없는 신념을 다시 새겨야 한다. 신념도 신의도 사라져가는 혼돈의 시대에 천년의 세월을 떠받힐 신념의 큰 바위 얼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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