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풀을 뜯지 않듯이 호랑이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가거나 몸을 숨겼다가 덤벼들어 먹이를 잡지만, 도망가는 동물을 쫓아가서 잡아 먹는 법도 거의 없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그런데 호랑이(대기업)가 풀(중소기업 진출영역)을 먹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정신이 없거나 어디가 아픈 경우일 것이다. 정상적인 호랑이 라면 풀을 뜯어먹지는 않을 것이다.
진입규제를 완화해서 중소기업이 망한다면 그건 중소기업이 해야 하는 사업이 아니다. 진입장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닐 것이다.
최근 사의를 표명한 서동원 공정거래 위원장은 얼마전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규제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높은 수준으로, 특히 대기업들을 자율적으로 놔두고 이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 부위원장은 또 중소기업은 진입장벽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이 발언들은 현 정부 들어 달라진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아울러 시장경쟁의 논리에 입각해서 경쟁제한적인 진입규제를 과감히 허물겠다는 메시지라고 해도 무방할듯 싶다.
최근 공정위가 추진 중인 주요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공정거래 정책이 독과점, 카르텔(담합), 시장우월적 지위 남용 등에 대한 본연의 업무영역을 벗어나 자칫 자충수가 될만한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문제는 이 같은 무차별적인 각종 진입장벽 철폐가 '대기업만을 위한 잔치'로 귀결되면서 자칫 '중소기업 죽이기', '약자 죽이기'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에 이어 기업형 슈퍼마켓(SSM)까지 급속히 늘어나면서 슈퍼와 구멍가게들이 생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SSM 해법을 찾기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유통학회와 소비자시민모임 주최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렸다.
대·중소유통업체협회와 국회·정부 관계자, 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3시간여에 걸친 마라톤 토론회를 진행했지만 대·중소업체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여전했다. 양측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 채 현실적 조정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국회·정부 관계자 역시도 뚜렷한 조정방안 도출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서민자영업자들의 호소에 앞서 그들 자신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리라 본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형유통업체와 중소상인과의 자율협의가 실패하면 조정심의과정으로 넘어간다. 조정심의는 공정거래위원장과 지식경제부 장관이 추천하는 2인과 중기청장이 추천하는 7인 이내의 위원과 위원장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는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배고픈, 혹은 미친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는 우(?)'를 자초하지 말기를…
아주경제=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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