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붕의 생각나무) '3불 시대'의 쌀시장 개방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지금도 쌀 농가수는 전체 농가의 절반에 달하고 농가소득 중 쌀의 비중은 40% 정도로 다른 작물보다 높다. 부모 세대들이 농촌에서 농삿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쌀이 그 기반이었다. 쌀은 농민들에게 생존권의 문제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는 수입쌀에 대한 조기 관세적용 문제를 놓고 고민에 쌓여있다. 수입쌀에 대한 조기 관세 적용을 놓고 농민들과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합의했던 대로라면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쌀 수입에 관세를 적용해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으로 매년 2만t씩 외국쌀 수입량을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4년 20만5000t에서 올해는 총 30만t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또 2014년에는 의무수입량이 총 40만9천t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내년부터 관세를 적용하면 이렇게 매년 증가하는 의무수입물량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 현재 국제 쌀값 시세를 고려할 때 10만t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400억원에 이른다.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내년에 쌀 시장을 개방(쌀 관세화 적용)하면 앞으로 10년동안 2000억∼4000억원의 수입쌀 도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국제 쌀값도 예년보다 급등해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국제 쌀값은 2004년보다 세배 정도 뛰어올라 수입쌀 가격은 kg당 약 1400∼1500원 으로 거래되고있다. 국산과의 가격차이가 약 25%정도 밖에 나지 않는다. 높은 관세율로 수입쌀 가격을 올린다면 국산쌀도 가격경쟁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도 지난 1999년 조기 관세화를 단행했지만, 고율의 관세부과 등으로 상업적 목적의 쌀 수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은 쌀 시장개방을 단순히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반대하고 있다. 농민들은 쌀 시장이 개방되면 값 폭락, 수입량 증가 등으로 쌀 농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생존권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쌀 시장개방이란 말 자체에 농민들은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3불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을 흔히 한다. ‘3불(不)’은 불신(不信), 불만(不滿), 불안(不安)을 가리킨다. 각 자가 느끼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크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고, 서로에 대한 불신도 크다는 것이다. 특히 불안과 불만은 불신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도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대한민국 중앙부처 공무원 중 자기실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쌀 시장개방은 농민들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국민이 반대하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면 반드시 반대급부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불신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쌀 시장을 조기 개방하면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농식품부는 여러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쌀 조기관세화 문제를 시간에 쫓긴 나머지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이 내년부터 관세를 적용 하기에는 시간적으로도 촉박한 것이 사실이다. 보다 긴 안목으로 관세 문제를 결정하길 바란다.


아주경제= 박재붕 기자 pjb@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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