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차세대 먹거리 발굴 위해 과감한 투자 절실
GM, 크라이슬러 등 단기성과 치중하는 미국식 전문경영인체제 他山之石
글로벌 경제 불황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향후 상당기간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그룹이 경영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7일 재계의 고위관계자는 “미국 재계를 대표하던 GE, 크라이슬러, GM 등 세계적인 초일류기업들이 이번 불황에 초토화됐던 것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그룹이 이 같은 문제를 차단하고 과감하게 중장기 투자를 감행해나가기 위해서는 오너체제 복귀 및 전략기획실 부활 등 그동안 수면 밑에 눌려 있던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D그룹의 한 임원도 “사실 현대자동차가 올해 미국시장에서 실직시 차를 되사준다는 ‘바이백(Buy Back)프로그램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는데, 이 같은 프로그램은 위험도가 너무 높아 오너체제(정몽구 회장)가 아닌 전문경영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그룹 역시 앞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나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위원회 비슷한 집단 전문경영인체제(사장단회의)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중견그룹인 K그룹 L상무도 “수십 년 전부터 오너-전략기획실-각 계열사라는 3각축으로 이뤄진 삼성그룹의 경영시스템과 향후 경영방향 등은 대한민국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왔다”며 “그러나 지난해 6월 전략기획실이 폐지된 이후 삼성 사장단회의에서 이렇다 할 경영 화두들이 나오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그룹을 짓눌렀던 법적인 문제들도 해결돼 삼성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상태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사건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사건이 지난달말 사실상 종료되면서 승계문제로부터 굴레를 벗은 상태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력사들이 대약진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할 시점이 됐다는 상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 호전은 이건희 회장이 선두에 서 있던 4~5년 전부터 치밀하게 미래에 대비했던 결과로 평가된다.
이번 타이밍을 놓칠 경우 경영시스템 문제로 도요타에 뒤쳐진 GM처럼 자칫 삼성도 향후 3~4년 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기업들로부터 추월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여러 여건상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복귀가 어려울 경우 이재용 전무에 더 힘을 실어주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 재계의 현실상 오너가 책임지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구조가 정착돼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징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공동책임=무책임’ 형태의 안일한 경영시스템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삼성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어떤 형태로든 그룹 경영 전반을 들여다보며 계열사 간 갈등을 조정하고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전무의 경영전면 등장이나 전략기획실의 부활 등 경영시스템 재편 논의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이형구 기자 scaler@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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