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의 수레바퀴) 카드모스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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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9-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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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모스의 승리’(Cadmean victory)는 싸움에서 이긴 뒤에 오히려 더 큰 재난이나 새로운 시련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 테베 왕국을 세운 카드모스가 부하들을 죽인 큰 뱀을 처치해 버렸는데, 죽은 뱀은 군신(軍神)인 아레스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결국 카드모스는 두 딸과 손자들이 불행하게 죽는 고통을 겪게 된다.

비슷한 말로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가 있다. 상처뿐인 승리를 뜻하는 관용어다. 전(前) 미국 대통령 부시의 이름을 딴 ‘부시의 승리’도 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이 득보다 실이 많은 군사적 승리라는 의미다. 아버지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몰아내느라 오사마 빈라덴을 키우고,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을 지원한 것이 아들 부시에 와서 화근이 된 것을 비꼬는 것이다.

77일간의 혈전을 벌였던 쌍용차 노조가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노조원들이 자발적으로 투표한 것이어서 법적 논쟁이 우려되지만 모양새는 이미 기울어졌다. 노조원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쌍용차 사태처럼 꼬일 듯 보였던 금호타이어도 4개월 만에 임단협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노조는 ‘정리해고 철회’ 말고는 얻은 게 없다. 백기 투항이나 다름없다. 사측이 주장한 무노동 무임금 요구도 수용했다. 올해 기본급 동결과 지난해 성과급 추가지급을 없었던 일로 마무리했다. 사측 요구대로 정원도 다시 조정하기로 했다. 다 내준 셈이다.

그 결과 합의안에는 올해 기본급 동결, 2008년 추가 성과급 미지급이 확정됐고, 2009년 성과급은 2010년 1분기 노사협의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사측이 교섭 초반에 내놓은 안을 노조가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민노총 탈퇴라는 강수를 둔 쌍용차 사례가 노동계에 미친 첫 사례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나올 정도로 치열했던 옥쇄파업을 벌이고도 전체 정리해고자 중 3분의 1인 300여 명만을 구하는데 그친 쌍용차 노조의 실패가 금호타이어 노조의 힘을 뺀 것이다.

노조가 무기력해 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절대 권력과 싸우는 투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이익집단으로 변모하며 민심으로부터 멀어졌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이유도 있지만 사회가 급속도로 개인주의화 하면서 강성 노조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결국 쌍용차나 금호타이어 모두 대중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그치고 만 것이다.

쌍용차 회생계획안 제출기한인 15일 현대차 노조 집행부 선거가 있고 곧바로 기아차 노조도 선거에 들어간다. 쌍용차나 금호타이어에 이어 노조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노동계 안팎의 관심이 뜨겁다. 향후 노동운동의 향배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할 것은 카드모스의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는 좌(左)와 우(右)의 구분이 없다. 선택일 뿐.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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