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묘역-시장 찾아···'정치적 왕따' 벗어나기 몸부림
한번 찍힌 낙인을 깨끗이 씻어내기는 어렵다. 과거의 행적,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 현재의 정치적 지향 등이 모두 고려돼 규정지어진 정치인들은 “제2의 정치인생을 열겠다”고 외치지만 새출발은 쉽지 않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단기필마’로 한나라당에 들어온 정몽준 대표는 와신상담의 세월을 넘어 ‘분골쇄신’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정 대표는 철저히 과거와 단절을 고했다. 정 대표는 15일 중앙당 사무처 실국장 상견례에서 “7년전 일로 고생을 시켜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과 ‘후보단일화’를 통해 한나라당의 집권 기회를 앗아간데 대한 사죄다. 다시는 민주개혁진영에 가지 않고 보수에 죽을때 까지 남겠다는 양심선언이자 신앙고백으로 들린다.
물론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 만큼 정 대표는 정치적으로 고아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현대중공업이 자리한 울산동구에서 당선된 이래 2004년 17대 총선까지 내리 다섯 번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울산공화국’의 맹주였다. 하지만 1992년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14대 대선 출마를 위해 만든 통일한국당과 2002년 대선 당시 그가 대선 출마를 위해 만든 ‘국민승리 21’에 1년 남짓 몸담았던 것을 제외하면 항상 무소속이었다.
외로웠던 탓일까 그는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들어간다. 18대 총선에서 ‘전략공천’으로 서울 동작을에서 대권후보였던 정동영 의원을 상대했을 때 그는 말없이 울산을 버리고 상경했다. 철저한 몸 낮추기의 전형이었다.
그는 최근 당대표직을 승계한 이후 또다시 ‘몸 낮추기’에 들어갔다. ‘가난의 설움을 모르는 재벌’, ‘정치계 왕따’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있다.
정 대표는 18일 광주 5·18국립묘역을 참배하고 이어 광주시당 오찬간담회, 양동시장 방문, 광주시청에서의 당정간담회, 신종플루 백신을 생산하는 녹십자 화순공장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정치적 소외지 광주의 바닥민심을 끌어안기 위해서다.
당심 잡기에도 올인하고 있다. 정 대표는 16일 당내 중도우파 성향의 ‘선진화를 추구하는 초선모임’과 조찬을 한데 이어 17일 개혁성향 ‘민본21’과도 만나 조기 전당대회 개최, 공천제 개혁 등 현안에 대해 두루 의견을 교환했다.
정 대표의 취임 일성은 ‘변화와 개방’이었다. 이 기조를 유지하고 집권여당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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