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력구조에 관한 제한적 헌법 개정’을 언급해 정치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개헌을 놓고 공방이 오가고 있으나 개헌을 위한 논의는 지금까지 보여 온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계파에 따라 ‘속도조절론’과 ‘본격 논의’가 엇갈리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진정성이 없다’며 경계감을 표시하면서 내년 지방선거 이후 거론할 문제라고 치부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만 선뜻 개헌논의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자칫 소수 정당이 개헌의 모든 책임을 질수 있다는 우려가 갈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헌법은 지난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이다. 군사독재 청산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대통령 직선제가 그 목적이었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정권 초기에는 지나친 권력 독점으로, 중후반에는 레임덕으로 국정 운영의 불균형과 불합리한 구조적 결함이 나타난 것이다. 또 중간평가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총선거와 지방선거가 임기 도중 끼어들어 일관성 있는 국정 수행을 어렵게 만들곤 했다.
이 대통령은 그간 언급했던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해 “여당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초당적이고 국가 발전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할 국가적 과제를 제시했다. 지난 8·15 경축사를 통해 밝힌 선거구제 및 행정구역 개편을 들고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와 연결해 ‘개헌’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해 원내대표실 아래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태스크포스팀은 이번 주부터 개헌과 관련한 각종 여론 조사와 연구 작업, 공청회 등을 가질 방침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발 빠른 행보와 달리 민주당 등 야당은 미온적 입장이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13년 2월까지이고 18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2012년 5월까지"라며 "개헌을 통해 임기의 엇박자, 선거의 엇박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이 스스로 임기를 단축하고 조기 퇴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이 대통령의 입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렇듯 개헌 논의가 국민이나 시민사회보다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주도되고, 개헌의 범위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 확대에 관한 기본권보다는 정부형태에 관한 통치구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정부형태 개헌이 시급한 근거로 대통령제하의 권력집중으로 인한 권력형 부정부패의 발생, 대통령과 국회의 극한적 대결, 대통령 선거를 통한 지역주의의 고착화 등을 들고 있다. 대통령에게 권력집중과 부정부패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후진적 정치문화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이번 개헌을 통해 무엇을 구현하려 하는지, 어떤 가치와 합의를 도출할 것인지 등의 논의부터 실질적인 의제가 설정돼야 한다. 권력구조와 정치제도, 정당제도 등에 대한 논의의 틀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토와 사회적 기본권 등의 의제도 함께 검토할 단계로 보인다.
이런 점을 감안 할 때 개헌 논의 과정에서 보다 폭넓은 차원에서 국가 사회의 변화와 미래 설계를 담보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 개헌론의 수준과 범위는 국민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규범이어야 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헌법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바꿀 것인지에 관한 국민적 동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서 시기와 범위에 대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일정을 잡아가는 등 로드맵을 만들면 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지만 개헌 논의 역시 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기득권에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며, 민주당 등 야당은 당리당략적 이해를 떠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번 개헌도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기보다는 ‘정치권을 위한 개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양규현 부국장겸 정경부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