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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연이 만난 사람)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창조학교 명예교장) "하나님의 기술을 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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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1-2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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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적 인재 육성해야 선진국 진입- Exclusive문화를 Inclusive문화로 바꿔야 긍정의 힘으로 새로운 국가문화를

'새로운 환경 앞에 던져진 대한민국호, 어떻게 끌어갈 것인가.'

'한국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지성(知性)'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창조학교 명예교장)은 어떤 해답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초일류 기업들이 힘없이 무너져 헤매고 있는 상황(플러스적 요인). 반면 갈수록 높아지는 선진국들의 환경 규제(마이너스적 요인)를 뚫고 대한민국이 G10에서 G4를 향해 내달릴 수 있는 동력의 원천이 무엇일지 이 전 장관은 짐작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8월말 오성민 기자와 함께 이 전 장관을 인터뷰해 지난 9월 7일자 지면에 보도했었지요. 이번에는 향후 대한민국호 경영 방향에 대한 그의 고견도 물어보고, 언론 차원에서 창조학교를 도울 부분이 있는지 말씀을 듣기 위해 곽영길 대표, 박정규 편집국장과 함께 가볍게 오찬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너무 중요한 포인트들이 많아 그의 한마디, 한마디들을 꼭 독자들과 함께 나눠야겠다는 생각에 메모를 했습니다.

76세의 고령. 하지만 나이를 믿을 수 없을만큼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 힘이 넘쳤고, '생의 마지막까지 젊은이들에게 창조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열정에서는 숙연함도 느껴졌습니다.

- 우리 한국의 문화가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할 토양이 척박하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수백년간 유교문화권에 함몰돼 있다 보니 '공자 가라사대(孔子曰)'라는 틀이 우리 몸 속에 맞춰져 왔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이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틀 외에는 어떠한 이견도 수용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반면 서양은 예수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어구처럼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안착돼 있습니다.

창조적 상상력은 기존의 틀을 깨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공자의 말씀 이외에 어떠한 이견도 용납하지 않는 문화는 결국 전 사회 조직원들의 사고를 획일화시킨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지요. 더욱이 한국민들이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창조적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취약한 상황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사회 시스템부터 창조적 사고 기반이 취약하게 돼있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취약한 구조가 어떤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미국을 봅시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해 뭐라고 하던가요? 60년 전 시골식당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한 흑인의 아들이 대통령이 된 나라이니, 얼마나 멋진 나라냐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떨까요. 정권을 잡자마자 당시 아버지를 쫓아냈던 시골을 박살내든지, 그 일대 지방자치단체의 정부 지원을 모두 끊든지 난리를 낼 겁니다.

비창조적인 사회의 조직원들 사고는 앞뒤로 꽉 막혀 버려있다는게 특징입니다. 분노와 한을 긍정적 힘과 창조의 원동력으로 만드는 사회,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을 외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투쟁과 줄서기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너는 좌파냐, 나는 우파다 하며 줄서기를 합니다.
배타적(Exclusive)문화를 수용적(Inclusive)문화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육군 10명과 해군 10명을 모아놓으면 해병대가 되는 걸까요. 이분법적 사고 아래 새로운 창조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 창조적 인재들을 육성하려면 교육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오셨는데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인슈타인을 봅시다. 그는 수학 외의 과목은 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4차원적 사고를 하는 세기적 천재였습니다. 입학시험에서 그를 평가했던 교수들은 3차원적 사고 밖에 하지 못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결국 젊은 천재를 몰라봤던 교수들은 그를 떨어뜨렸구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오늘날 우주개발이나 인공위성은 물론 내비게이션 등 실생활에까지 불변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돼 있는데 어떻습니까. 우리의 입학사정관제들을 넘어서는 천재 학생이 시험을 치를 때 그를 받아줄 수 있는 시스템이 돼 있는지 자문해봅시다."

- 나라가 획일적 조직원들보다 진정으로 창조성 있는 인재들 중시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유명한 화가 라파엘이 천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국왕이 총리와 함께 와서 구경을 하는데 사다리 끝에 매달려 그리는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여보시오 총리, 저 사다리 좀 잡아주시구려'했답니다. 총리가 '아니, 만일 사다리가 부러지면 제 목이 부러질텐테요..' 하고 말하니 국왕은 '총리는 또 바꾸면 되지만 라파엘 같은 화가는 또 구할 수 없으니 아무래도 꽉 잡아주는게 좋을 것 같소' 하더랍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창조성이 뛰어난 인재들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 화제를 돌려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환경문제가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인류의 산업도 위축될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산업 트렌드를 어떻게 전망하고 계시는지요.

"앞으로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생체모방) 연구가 크게 활성화될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은 시작단계지만 바이오미미크리 산업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지구 자체를 봅시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일으키기 전에는 모든 것이 리사이클링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육지의 동물에서 발생하는 배설물들은 식물의 자양분이 됩니다. 강을 타고 흘러드는 노폐물들은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거나 소금물에 융해돼 버립니다. 바닷물에서 증발한 깨끗한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육지를 적십니다. 정말 경이로운 리사이클링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수십년이 지나도 썩지않는 제품들을 쏟아내왔습니다. 연간 수천만대씩 새로 출시되는 자동차들이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연꽃 잎을 보신 적 있으시죠. 물이 떨어져도 스며들지 않고 쪼르륵 내려옵니다. 이같은 신비함을 활용하면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벽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새를 모방해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매연을 내뿜으며 날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는 공해 한 방울 내지 않으면서 사뿐 사뿐히 날아다닙니다. 반딧불이(개똥벌레)의 불빛도 신비할 뿐입니다.

최근 서양에서는 재닌 베뉴스의 바이오미미크리 길트연구소와 같은 새로운 영역을 추구하는 연구기관들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연구들은 곧바로 산업과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앞으로는 이처럼 ‘하나님의 기술을 훔치는’ 산업들이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

- 정부가 녹색성장 정책을 강도 높게 펼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책들이 있을까요?

"유럽의 한 주차장은 입구에서 차들이 덜컹거리고 지나가는 에너지를 활용해 주차장 조명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녹색성장은 생활의 업그레이드요,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재미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모 기관에 '자전거 거리패션쇼 대회를 열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얘기해 준 적도 있습니다. 어쨌든 앞으로 많은 창조적 아이디어들이 나와 대한민국을, 경제를, 사회를 살찌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어령 전 장관과 창조학교>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창조학교’다.

희수(稀壽)를 훨씬 넘긴 나이인데도 ‘창조’를 화두로 젊은이들과 토의하는 것을 즐긴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 민족상잔, 이승만정권, 박정희 군사정권 등 대부분의 한국인들과 같이 삶을 영위해왔음에도 그는 왜 창조적 상상력에 굶주려 있었으며, 왜 지금도 다른 원로들과 달리 '창조학'을 그토록 강조하고 있을까?

그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다음은 그가 전하는 '이어령과 창조학교 이야기'.

* * *
"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창조적 상상력을 갈구했었나 생각해보면, 공부를 열심히 안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국민학교 때 교실 뒤 벽면에 거북이는 기어가고, 제비는 빨리 날아가는 그림이 있었어요. 같은 시간에도 제비가 훨씬 빨리 간다는 메시지였지요.

선생님한테 '거북이 느리고 제비 빠른 건 당연하지 않나요. 차라리 제비새끼들 여럿이 입벌리고 있는데 어떻게 제비 어미가 금방 먹인 놈, 안먹인 놈 알고 벌레를 넣어주는지 그런 걸 알려주세요'했다가 얻어맞았습니다. 그런 식의 교육이었지요. (얼마 전에야 한 연구 결과를 보고 제비 어미가 가장 크게 입 벌리는 놈이 배고픈 새끼라는 것을 알고 넣어준다는 것을 알았어요.)

6학년 2학기 때 일제시대가 끝나고 해방이 됐습니다. 선생님들이 갑자기 우리 역사를 가르치려니 뭘 알겠어요. 거북선을 잠수함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떤 친구가 일본 배는 어떤 배였냐고 물어봤다가 '쓸데 없는 것 물어본다'며 귀 싸대기를 맞았습니다.

중학교에 갔더니 '잠수함은 아니고 철선이었다'고 가르치고, 고등학교에 가니 '철갑선'이라고 하고, 대학교에 갔더니 '뚜껑에 쇠꼬챙이를 꽂은 것은 확실하다'고 합디다. 거북선은 배에 뚜껑을 씌우고 쇠꼬챙이를 꽂아 왜군이 못 뛰어들게 한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것입니다.

결국 우리 세대에게는 세계적인 창조물을 만든 이순신 장군의 신뢰도까지 떨어진 셈이예요.

이렇게 사실관계조차 불분명한 정보를 얻으며 무식하게 교육받은 게 우리 세대입니다. 질문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토론 문화 같은 건 상상도 못했지요.

창조학교는 각 학생마다 갖고 있는 창조성을 극대화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벽돌과 돌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벽돌은 새로 찍어내면 됩니다. 그러나 전 지구상에 있는 돌들은 모두 다른 창조적 개체입니다. 사람 개개인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창조적 개체입니다.

창조학교는 엘리트 학생보다는 좀 못한 학생들을 더 우대합니다. 엘리트학생들이야 스스로 알아서 업그레이드할 줄 알잖아요.

스스로 엘리트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창조학교를 통해 삶이 업그레이드되고, 사고가 창조적으로 업그레이드 된다면, 그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창조적 상상력과 정치지도자>

'창조적 상상력과 정치 지도자'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이어령 전 장관은 획일적 가치관이 요구되는 사회와 창조적 상상력이 뛰어난 사회에서 각각 성장한 정치 지도자는 유연성 면에서 견주기 힘들 만큼의 큰 차이를 보인다고 강조했다.

"획일적 가치관 속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지도자가 되면 당연히 유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사회에서 글로벌 리더십이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서구의 지도자들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지성이 풍부한 결정적 ‘화두’를 던지곤 합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예로 들어봅시다.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의 경우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갈등이 고조되자 '종교의 갈등은 없다. 신도의 갈등만 있을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 화두는 양측 신도들이 자신들을 다시 성찰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는 전쟁 영웅 맥아더의 명언을 비롯, 세계적인 지도자들마다 창조적인 화두와 명언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글로벌리더는 공석 또는 사석에서 지식인들을 휘어잡을 지적인 위트도 갖춰야 합니다. 처칠을 봅시다. 한번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간호사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자 성경문구를 빗대 '사람이 약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술도 마셔야 사느니..'하는 위트로 술을 얻어 마시는 등 매사에 유연성 있는 리더십과 위트로 정치를 했습니다.

러시아의 흐루시초프는 어떠했습니까. 그가 한번은 서방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있던 일입니다. 주인이 하인들에게 여기 풀들을 다 뽑고 감자를 심어라 했더니 실행했답니다. 이어 구덩이를 양쪽에 파고 가운데에 감자를 쌓아놓아라 했더니 그대로 했답니다. 이제 큰 감자는 왼쪽에, 작은 감자는 오른쪽에 넣으라 했더니 하인들이 '주인님, 뭐든 시키는대로 다 하겠으니 제발 감자크기를 구별하는 것 같이 힘든 일은 시키지 말아주십시오'하고 사정하더랍니다.

이 얘기는 서방 기자들이 공산주의 문제점을 지적해오던 것을 본인이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한 말입니다. 서방기자들에게 자국 러시아의 문제점을 유머로 비판했지만, 결국 그만큼의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지요.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을 봅시다. 이같은 감각들을 갖춘 인물이 있었던가요? 또 지금은 있습니까?

밤새도록 학원 쫓아다니며 입시준비 하는 현재와 같은 교육 풍토에서는 세계적 인재들이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결국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글로벌 지도자와 창의적 인재들이 길러질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아주경제= 오승연 기획위원 queenos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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