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론이 확산되면서 '위기 이후(post-crisis)'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위기 이후는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정상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낸 유동성을 흡수하는 출구전략이 시기상조라면서도 공조를 통한 준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기업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실업률이 치솟고 수요가 아직 되살아나지 않고 있지만 격변기에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위험이 큰 만큼 매력적이다. 다가올 호황기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위기 이후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세계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호황기를 앞둔 기업가가 꼭 유념해야 할 몇 가지를 지적했다.
신문은 먼저 경제의 완전한 회복을 기다리되 방심하지 말고 시장 상황을 주시하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그렇다고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업률 상승과 재정적자 급증 등 불확실성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롭 고페 런던비즈니스스쿨 조직행동학 교수는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며 "이를 실제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하면 회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어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해 시나리오를 짜두라고 주문했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려면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의 산업용 가스 생산업체 에어리퀴드의 베노이트 포티에 최고경영자(CEO)는 "기업가들은 현재 성장을 위해 투자를 조금씩 늘리는 동시에 비용은 최대한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크 토마스 PA컨설팅 대표 역시 가파른 회복세를 의미하는 V자형, 장기 침체를 나타내는 L자형, 경기가 잠시 회복됐다 다시 침체하는 W자형 등 최소 3가지 경기회복 모형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은 시장에서는 지각변동에 가까운 대변혁이 일어났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는 한 때 미국 자동차 '빅3'로 불리며 전 세계 자동차시장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디트로이트3'로 전락했다. 그런 만큼 과거를 되돌아 보며 고객의 소비행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등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CEO는 "이번 경제 위기는 전 세계 시장 환경을 '리셋(reset·재설정)'했다"며 "경제 위기 이전에 기업을 운영하던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상 침체기 동안 비용절감을 외치던 리더십 역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물론 호불황과 무관하게 불필요한 비용은 없애야 하지만 전망이 좋은 사업이라면 여력을 살펴 투자기회를 엿볼 필요가 있다. 제라드 클레스테리 필립스 CEO는 "침체기에서 벗어나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모험적인 투자를 감행해야 호황기가 도래했을 때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긴장했던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고페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이 임금 동결이나 복지혜택 축소 등과 같은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이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 그동안의 수고에 합당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문은 방만한 경영이 빚은 이번 경기침체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기업의 현금자산 흐름을 예의주시하라고 지적했다. 유동성 자산을 충분히 확보해 내실을 탄탄히 해야 더블딥(이중침체)이 닥쳐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기업 차원에서 부실경영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