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Book&Talk
차茶 한잔의 깨달음/ 한승원 著/ 김영사
해마다 요맘때면 책꽂이에서 습관인양 꺼내드는 책이 있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쓴 ‘차茶 한잔의 깨달음’(김영사刊)이 그것이다. 그런 지가 햇수로 벌써 3년째다.
책은 연필로 밑줄 긋는 재미가 쏠쏠한 편이다. 그뿐인가. 추석에 꼭 만나는 송편과 함께 읽으면 뭐랄까. 차 한 잔 없어도 떡이 잘도 넘어간다 할까나. 나는 그랬다. 하여 요맘때에 이 책을 소개하는 거다.
흔한 말로, 소설가가 직접 차밭을 일구고 찻잎을 따서 말리는 뻔한 내용이나 차문화의 시조, 초의 스님의 ‘동다송’과 ‘다신전’을 알기 쉽게 해석한 부록에는 끌림이 도통 생기질 않는다. 하지만 두고두고 우려내도 맛있는 책읽기는 이곳저곳 그득하다. 그 중 특히 ‘차의 홀로그램에 대하여’(201~206쪽)는 재미가 있다. 그대로 옮긴다.
한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중략) 젊고 예쁜 앳된 아내는 그가 먹을 저녁밥을 지어놓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을에 굴비 장수가 왔다. 아내는 남편에게 굴비를 먹이고 싶어 굴비 장수 앞에서 어릿거렸다. 굴비 한 마리를 들었다가 놓고 또 들었다가 놓았다. 그녀에게는 그것을 살 돈이 없었다. 굴비 장수가 눈치를 채고 그녀에게 말했다.
“니 맨살 한 번 보듬어보게 해주면 굴비 한 마리 줄게.”
여자는 수줍어하면서 길 옆 수수밭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밥상에 오른 굴비를 보고 어디에서 났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여자는 눈물 글썽거리며 굴비의 내력을 이야기 했고 남자는 성을 버럭 내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마!”
그러고는 저녁밥을 달게 먹고는 낮에 수수밭에 들어가 한 일보다 더 격렬한 사랑을 나눴다고 한다. (이 장면을 상상하면, 나는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터진다. 슬프지만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저녁 밥상에 굴비가 또 올랐으니 남편이 웬 것이냐고 물었을 거고 순진한 아내는 수줍은 얼굴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지.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않았어요.” (이 장면이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서글퍼지는 거다.)
그날 밤. 남자는 가난으로 인한 울분과 아내의 순백의 슬픈 마음과 굴비로 인해 솟구쳐 오르는 피 같은 사랑을 아내에게 쏟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소설가 한승원 선생은 생선회를 좋아하는 당신의 마음을 읽고 새벽 4시 반이면 4킬로미터나 떨어진 포구까지 걸어가서 남편 먹이고자 밥상을 준비하는 착한 아내를 은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듯 연신 자랑한다. 이른바 팔불출인 셈. 그런데도 내 보기엔 참 좋으니 어쩔거나?
그렇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뒤로는 괜찮다고 좀 착각한들 또 어떠랴. ‘당신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둘이 아는 데 말이다. 차례는 한자로 ‘茶禮’이다.
형편이 가난하다 해서 제사상에 올릴 찬에 격식이 부족하더라도 ‘가족’은 다 안다. 사랑과 정성이 더욱더 중요한 것을. 해서 차 한 잔에 송편만 차려져 있더라도 추석은 보름달처럼 넉넉한 거다.
심상훈 북칼럼니스트(작은가게연구소장)ylmf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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