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명예교수, 한국선진화포럼 정책위원장)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중도실용’ ‘서민지원’ ‘경제위기 선’」 등의 정책적 노력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민지원정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우선 대통령이 스스로 빈민촌 서민상가 중소기업을 순방하면서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모습이 국민들 맘에 와 닿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서민들에게도 재활의 기회를 주기위해 미소금융재단 등을 신설토록 촉구하며, 무담보 무보증 저금리 대출이 가능토록 새로운 서민금융을 출범시키려 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유누스 박사가 시작해서 성공을 거둔 ‘그라민 뱅크’를 벤치마킹하여 기존의 보수적 은행대출 관행을 뛰어넘는 파격적 서민금융제도를 도입할 모양이다.
그런데 진정한 서민정책이란 금융보다도 더 골이 깊고 고통이 더 심한 분야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민들이 겨우 생계를 의탁해 먹고 사는 소규모 영세업소에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이 아직도 넘나들고 있다. 이들 업소가 무허가이거나 도시계획에 어긋나는 곳에 있을 때 이를 기회로 영세 상인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해가는 말단 공무원들의 작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상가의 질서를 지켜준답시고 클럽을 조직해 영세노점상들로부터 일당(日當)을 뜯어내는 세력들도 많다. 주로 야간에 문을 여는 유흥요식업종은 이른바 야간수비대라 부르는 조직폭력배들 때문에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여기에 관할지자체는 한술 더 뜬다. 모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디자인행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구두수선 가게와 담배 가판대에게 원하지도 않은 신형시설물을 설치해놓고 무조건 이를 받아들이라고 하면서 매년 50만원에서 80만원씩 사용료를 지불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고 한다. 대개 기존의 판매대가 무허가이거나 공용시설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지자체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약점을 갖고 있다. 중앙정부의 서민정책은 서민금융뿐만이 아니고 이 같은 기초생활상에 대한 대책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의 서민들의 고통으로 치솟는 사교육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언론에서도 누차 다루어진 문제이고 또 교육당국에서도 10시 이후 과외금지니 뭐니 해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이지만 그 해결책은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사교육비의 주범은 물론 치솟는 학원비이다. 정부당국에서 이를 막기 위해 각종 강경책을 내어놓고 있으나 규제가 강해질수록 학원가의 ‘지하경제’는 더욱더 확대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서민생활을 괴롭히는 것으로 의료혜택 문제도 만만치 않다. 생활수급자도 아니면서 최근의 경기침체로 인해 실업상태에 놓인 서민들은 지역의료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가구가 많다. 이들이 6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경우 의료 보험사들은 이들의 의료보험의 혜택을 여지없이 중단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전달체계가 기초진료비 본인부담원칙, 국민의료개보험 원칙, 취약계층국가보호원칙 등 위에 서있긴 하지만 취약계층에 속하지 않은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의 경우 보험 없이는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실정이다. 특히 병원으로부터 암 같은 중증진단을 받은 서민들의 경우 비싼 항암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냥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하고 마는 예가 허다하다.
이상에서 필자가 예시한 서민생활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서는 정부의 서민금융 확대가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금융외적인 사회질서가 제 수준에 오르지 않고서는 복지국가가 건설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정부가 서민생활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까?
조선조 성종시대에 임금이 미복잠행(微服潛行)하면서 서민의 아픔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던 일들이 우리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고위 관료들이 서민사회에 직접 들어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상세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을 대동하고 떠들썩하게 돌아다니는 민생시찰은 실속이 없다는 것을 서민들은 다 안다. 서민들의 아픔이 제대로 파악됐다면 그 치유법은 자연히 나온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