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전 총리 회고록) 개발경제시대 주역의 고백,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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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0-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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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덕우 전 총리
"청와대로 올라가면 박정희 대통령은 언제나 나에게 담배부터 권한다. 지금은 안 피우지만 그 당시에는 줄담배를 피웠는데, 그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파에 앉더니 박 대통령은 두 손으로 빨래 짜는 시늉을 하며 ‘남 장관, 쥐어짜지만 말고 업계의 사정 좀 돌봐줘’하는 것이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는 회고록 '경제개발의 길목에서'를 통해 1970년대 개발시대를 돌아보며 "경제개발과 국방을 우선순위에 둔 박정희 정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이 선행되지 않으면 '정치적 민주화'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박 전 대통령과 남 전 총리의 신념이었다.

1924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남 전 총리는 국민대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을 거쳐 평생 동안 경제현장을 누볐다.

그는 1969년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는 등 격동의 세월, 한국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남 전 총리는 개발시대의 혼란상을 회고하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두 번의 석유파동과 인플레이션, 민간경제성장 등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1960년대 후반기부터 한국경제의 도약이 시작되면서 연 10%이상의 고도성장이 10여 년간 지속됐다. 이는 한국경제가 성공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남 전 총리는 1983년부터 8년간 한국무역협회를 이끌며 현장에서 수출 신장을 주도했다.

그의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은 한결같았다. 시장경제의 틀을 지키면서도 격변하는 상황에 따라 신축성 있게 대응하는 것이다.

남 전 총리는 2005년 진념 전 경제부총리, 유장희 당시 이화여대 부총장 등 전직 경제관료, 후학들과 함께 '한국선진화포럼'을 발족시켰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비틀거리던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을 우려해 결정한 일이었다. 파이를 키우기도 전에 분배에 치중하는 분위기를 쇄신해 '성장 한국'으로 방향을 돌리는데 지식인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200여 명의 학계, 전직 관료, 재계, 문화계의 인사들이 회원 또는 자문위원으로 참가했고 활발한 토론과 대안제시를 통해 참여정부의 정책을 친기업 쪽으로 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400쪽 가까운 분량에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경제정책의 명암을 촘촘하게 담아낸 그는 "지금 1994년과 똑같은 위기 상황을 앞에 놓고 여·야와 좌·우가 서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국민통합을 강조한다"며 "그러나 국가이념이라는 정신적 구심점없이 과연 통합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아주경제= 이나연 기자 n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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