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알기전 찾아온 이별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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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0-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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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나의 개인적인 상처의 극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마음에 가지고 있는 이별과 사랑에 관한 드라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상처를, 혹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우니 르콩트 Ounie Lecomte)

'오아시스' '밀양' 등 만드는 영화마다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며 대중과 소통해온 이창동 감독이 '여행자'의 시나리오에 반해 직접 제작자로 참여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밀양의 프랑스 개봉 당시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르콩트 감독은 '여행자'의 초고 시나리오를 이창동 감독에게 건넸다.

이창동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고 "아주 단순하지만 인생에 대해 매우 많은 것을 담고 있다"며, 직접 제작과 동동 각본가로 이 영화에 참여하기를 결정했다. 어린 시절 프랑스로 건너가 줄곧 그곳에서 자란 우니 르콩트 감독의 기억 저편의 희미해진 이야기들은 이창동 감독과 만나면서 작은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극적 긴장감이 넘치는 특별한 영화로 재탄생했다.

여행자는 르콩트 감독이 아홉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되기 전 서울의 성 바오로 고아원에서 보낸 1975년에서 1976년까지 한 해 동안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르콩트 감독은 실제 경험을 토대로 전반적인 뼈대를 세운 뒤, 극적 긴장감을 유도하는 장치나 구체적 상황을 살로 덧붙였다.

의사와 면담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실제 감독의 경험에서 바탕이 되었지만, 도형 안에 색을 칠한다거나 자신이 보육원에 온 이유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만들어진 픽션이다. 이렇듯 기본 토대를 이루는 생생하고 탄탄한 틀 덕분에 영화는 더욱 섬세한 구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또 이별 앞에 있는 아홉 살 소녀의 아픈 감정을 예민한 듯 부드러운 '진희(김새론 분)'라는 캐릭터를 통해 한편의 좋은 문학작품을 읽는 느낌과 여운을 준다. 아빠와 함께 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웃을 수 있었지만,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진희는 보육원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국 진희가 돌아갈 곳은 자신이 버려진 보육원 밖에 없다. 절망적인 상황을 깨달을 때마다 진희는 선물로 온 인형을 갈기갈기 찢는다. 급기야 자신이 철저히 버려졌음에 대한 사형선고라도 하는 듯 스스로를 땅에 파묻는 등 무례하고 거친 행동들을 통해 절망과 분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감독의 섬세한 스토리 구성은 진희를 비롯한 각 캐릭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몸이 불편해 입양되지 못하고 성숙한 나이가 되도록 보육원에 남겨진 아이, 좋은 곳에 입양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아이, 부모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 굳게 믿으며 떠나지 않으려는 아이, 그리고 보육원에서 엄마처럼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등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는 감독이 보육원에 있던 짧은 시절 동안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속 파편들로 더욱 구체적으로 체계화 됐다.

그리고 캐릭터마다 각각의 색깔 있는 사연들을 입히며 더욱 풍성한 이야기와 감정들을 만들어 냈다.

2009년 5월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특별 상영으로 전 세계에 처음 공개된 여행자는 관객들과 평단의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후 토론토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섹션,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 도쿄국제영화제 윈즈 오브 아시아 섹션에 연이어 초청되며 세계무대의 끝없는 호평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국내에서 진행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의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상영 후 진행된 Q&A 시간에는 관객 대부분이 1시간이 넘도록 대화에 참여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또 내년 베를린국제영화제도 공식 초청을 받아 '똥파리'에 이어 세계무대를 뒤흔들 대한민국 대표영화임을 입증했다.


아주경제= 인동민 기자 idm81@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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