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언(序言)-동아시아로 가는 길
噫吁戱, 아아 !
危乎高哉. 험하고도 높도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나라 가는 길,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렵구나.
동아시아로 가는 길은 지난하다.
어쩌면 그것은 이백(李白)이 읊었던 험난한 촉도(蜀道)보다 더 어려운 길일 수 있다. 근대 이래 우리는 잃었던 길을 다시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다른 길을 간 적도 있었고 길을 잘못 들어 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바른 길을 찾기 위한 그간의 신산(辛酸)한 여정은 이른바 ‘동아시아 담론’ 속에 고스라니 담겨 있다.
선사시대부터 대륙을 위시한 한반도, 일본 열도 등 동아시아 여러 지역은 종족의 이동, 문화 교류 등을 통하여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관계는 도작(稻作) 농업의 전래라든가 도구 양식의 상동성, 신화 모티프의 유사성 등 여러 방면의 탐구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역사시대에 들어와 춘추(春秋), 전국(戰國) 시기부터 빈번해지기 시작한 동아시아 지역 간의 교류는 한대(漢代)에 이르러 전쟁․ 교역 등으로 인해 본격화 된다.
한대는 특히 중국의 종족적, 문화적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로 당시 성립된 한문학과 유교는 이른바 한학․ 한문화 등의 이름으로 주변국에 대해 장구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진(魏晋)․ 남북조(南北朝) 시기는 한족(漢族)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혼란기라 하겠지만 사실상 대륙과 주변 지역, 동아시아의 허다한 민족이 활발하게 교류하며 문화를 주고받던 시기였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동아시아 여러 나라, 여러 민족 간의 정치, 문화적 교류는 절정에 달한다. 당 왕조는 위진․ 남북조 이래의 문화적, 민족적 혼종성(混種性)을 바탕으로 개방과 포용의 정책을 펼쳐 이른바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성세(盛世)를 구현하였다.
수도 장안(長安)은 국제도시로서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였으며 장안의 도시 모델은 신라의 경주, 발해의 상경(上京), 일본의 평성경(平城京) 등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 시기의 초국적, 다민족적 상황은 오늘날 세계화 현상의 선구라 할 만하다. 바야흐로 "문화는 동사다"라는 반 퍼슨(C. A. Van Peursen)의 언명이 실감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송대(宋代) 이후 동아시아 여러 나라는 당대의 빈번했던 교류로부터 비교적 소원한 관계로 들어선다. 그럼에도 주자학을 중심으로 유교가 한국․ 일본․ 월남 등에 확산되어 공통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유·불·도 삼교가 균형 있게 발전했던 당대와는 달리 송대 이후의 중국은 유교 독존의 체제에서 탈피하지 못하여 사상적, 문화적 개방성과 탄력성을 상실하였다. 그 결과 근대에 이르러 서구 열강의 도전에 과감히 응전하지 못하고 침몰하고 말았다. 교조적 유교 왕국이었던 한국은 국권 상실이라는 더욱 비참한 상황에 빠졌다.
다만 불교, 유교, 토착사상 등 상대적으로 중국·한국에 비해 사상적 소통의 여지를 지녔던 일본이 난학(蘭學) 등의 과정을 거쳐 서구 문명을 순조롭게 수용하여 일찍이 근대화에 성공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사시대부터 장구한 시기 동안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자산을 공유해왔던 동아시아 여러 나라는 근대 이후 강력한 외부의 힘에 의해 찢겨져 서로 다른 생존의 길을 걸어왔다.
가령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모토를 내걸고 이른바 '아시아의 악우(惡友)들'과 절교를 선언한 것이나 과거 동아시아의 내부 질서이기도 했던 천조체제(天朝體制)가 깨어져 중국이 한국, 월남 등에 대해 종주국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 것 등은 바야흐로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각자 새로운 투쟁의 환경에 들어섰음을 의미하였다.
이후 동아시아 여러 나라는 세계체제의 순환구조 안에서 부침을 거듭하면서 근대의 험한 격랑을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미·소 양 대국에 의한 냉전체제가 지배하였으나 소련의 와해 이후 미국 독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 EU의 결성과 중국․ 인도의 부상, 동아시아 경제의 도약 등으로 인해 바야흐로 세계는 다극 체제로 나아가고 이 과정에서 세계화와 더불어 지역화는 필연적인 추세가 되었다.
이른바 '동아시아 담론'은 지구지역화 시대에 강대국 지배 체제에서 벗어나 힘의 균형을 이루는 다극 체제를 구현하기 위하여 일국주의를 불식하고 정치, 경제, 문화적 연대를 지향하는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논의로서 출현하였다.
2. 동아시아 담론의 경과
동아시아 담론은 협의의 차원에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구지역화 시대 다극체제 지향의 산물이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동아시아 연대를 목표로 한 논의라는 광의적인 차원에서 보면 과거에도 이와 관련된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었다.
가령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은 구미 열강에 대항한다는 명분하에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을 제창하였는데 황국사관(皇國史觀)에 바탕한 이 주장은 공영은 커녕 오히려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일국 패권주의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아울러 1970년대 이후 일본을 비롯,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 발전에 고무되어 서구 학자들 및 재미 화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유교자본주의론'은 동아시아의 발전 가설로서 한때 관심을 끌었으나 자본주의에 대한 과신, 중화사상 재현 등의 혐의로 인해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선 대안으로 부상하지는 못하였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국내에서는 기존의 일국 중심 동아시아 논의를 딛고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층위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전개되었다. 가령 인문과학 분야에서는 계간 『창작과 비평』과 『상상』, 『동아시아 문화와 사상』 그룹이,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계간 『전통과 현대』와 한백연구재단 그룹 등이 활발하게 논의에 참가하였다.
이 중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담론을 주도하였던 그룹은 『창작과 비평』과 『상상』이었는데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작과 비평』그룹은 일찍이 백낙청(白樂淸) 선생이 제기한 민족문학론의 기조 위에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들은 탈근대 및 근대 극복을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문명과 대안 체제를 창출한다는 취지에서 동아시아 연대를 기획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및 정세 분석이 논의의 중심을 이루고 이 과정에서 각종 사회과학적 관점이 중요하게 원용되고 있다.
『상상』그룹은 이와 대조적으로 처음부터 동아시아 연대를 표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정치, 경제적 연대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면서 동아시아 연대를 위해서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문화적 동질성의 확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동아시아 문화 제대로 보기'운동을 통해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가치성을 탐색함과 동시에 ‘주변문화론’의 입장에서 서구의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편견, 동아시아 내부에서의 화이론적(華夷論的) 관점 등을 비판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대부분의 그룹이 해체되면서 동아시아 담론은 『창작과 비평』그룹에 의해 독점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창작과 비평』그룹의 동아시아 담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변화가 있다. 동아시아의 중요한 일원인 중국의 정치적 행보 및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 다소 이상화된 인식을 보여줬던 과거의 경향으로부터 탈피하여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것은 2000년대 들어서 역사문제․ 문화갈등 등 중국과의 마찰이 표면화되면서 주변국으로서 정치, 문화적 정체성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인식은 종래 주목하지 않았던 동아시아 내부에서의 강대국(중국 일본)과 주변국 및 주변 종족(디아스포라 포함) 사이의 긴장과 갈등 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확산, 혹은 심화되면서 강대국을 상대화 시키는 탈중심의 전략을 취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논의를 전개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여......억압당한 다원적 주체의 목소리를 발굴"으로써 "동아시아론의 국가주의를 극복"하겠다는 기획을 일관하는 '주변의 관점'은『창작과 비평』그룹의 동아시아 담론이 이전 시기보다 내적 밀도를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3. 동아시아 공동체로의 첩경-공유문화의 탐색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제기된 동아시아 담론의 주요 내용들을 일별(一瞥)하면서 드는 생각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하는 논의들의 바탕에 공유문화에 대한 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문과학 방면이든 사회과학 방면에서의 논의이든 공통의 경향인데 가령 유교자본주의론은 말할 것도 없고 『전통과 현대』·『동아시아 문화와 사상』그룹 역시 유교문화에 비중을 두었으며 『상상』그룹은 신화․ 도교․ 전통 소설 등 고전 서사와 상상력에 천착한 바 있다.
『창작과 비평』그룹은 뚜렷이 어떤 문화인지를 지목하진 않았지만 "공통의 문화유산이나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일정한 지역적 교류 등 실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의 존재를 긍정한다.
이러한 중론은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장 효과적, 선결적으로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그것은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물론 최근 중국․ 일본과의 역사문제․ 문화갈등 등에서 보듯이 문화 역시 정치화, 이데올로기화될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과거의 사례를 감안할 때 정치 경제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일 보다 정서적 동일시를 달성하기 쉽고 자국중심주의에 함몰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담론 양상에 비해 미시적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작업의 성과는 그리 높지 않다.
현재 동아시아 공동체를 가장 강력히 추동하는 지적 집단인『창작과 비평』그룹은 멤버 거의가 근현대사 혹은 근현대문학 전공자들로 이루어져 동아시아 담론의 경우 근대 이후 사안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정치․ 경제 등 사회과학적 관점에의 의존도가 높아 비록 ‘문명적 유산’ 즉 전통문화의 창조적 활용을 강조하긴 하지만 사실상 선언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여타 그룹들의 작업 중에서 유교를 제외하고 공유문화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탐색이 이루어진 사례를 꼽는다면 『상상』그룹의 '동아시아 문화 제대로 보기' 운동에서 수행한 동아시아 서사의 공통적 특성 및 현대적 수용에 대한 논의를 들 수 있다. 이 방면의 논의는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멤버들에 의해 문화산업·창작·비평 등의 분야에서 동아시아 공통의 서사성을 수용, 확인하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담론 그룹들의 동아시아 공유문화에 대한 탐색이 선언에 그치거나 답보 상태에 머물러 심지어 공리공담의 상황을 노정하고 있을 때 이어령(李御寧) 선생은 실증적이고도 미시적인 차원에서 공유문화에 대한 탐색을 실천함으로써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로의 행보를 선구적으로 내디뎠다.
선생은 정치․ 경제의 이념으로 양극화되었던 세계가 문명·문화를 토대로 한 다원적인 세계구도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인식하에 한·중·일 삼국의 문화코드를 읽는 작업을 통하여 공통의 언어와 상상력, 사고의 문법을 구축, 동아시아 공유의 문화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이를 위한 실천으로 가치중립적이고 역사적으로 공유해온 구체적인 대상물의 상징과 이미지를 비교해 그 차이와 공통점을 밝히는 작업을 수행하였는데 1차 작업이 "사군자(四君子)와 세한삼우(歲寒三友)를 통해 본 한·중·일의 문화코드 분석"이었고 결과물로 매(梅) 란(蘭) 국(菊) 죽(竹) 송(松)에 관한 다섯 권의 책을 2006년에 완간하였다. 2차 작업인 12지(支)에 대한 분석은 선생이 주관하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 의해 현재 진행 중이다.
선생의 이러한 기획은 몇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다.
첫째,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추구를 선언적, 담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미시적으로 실제의 가능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고 검증했다는 점이다.
둘째, 문화적 동질성의 확인 범위를 정의조차 애매한 동아시아가 아니라 한․중․일로부터 시작함으로써 문화공동체 형성에 보다 현실화된 접근법을 취했다는 점이다.
셋째, 문화유전자 혹은 문화코드의 개념을 도입하여 문화적 동질성의 추상성을 벗겨냄으로써 같고 다름의 구별을 보다 분명하게 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러한 개념들은 한․중․일의 문화적 동질성을 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계량화, 도식화하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4. 한·중·일 문화유전자 지도 제작의 의미와 방안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건립을 위한 선결적인 과제로서 한·중·일 공유문화에 대한 탐색은 한·중·일 공유의 문화유전자 지도를 제작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담론이 흥기한 이후 연대를 향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 될 이 작업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동아시아 문화와 세계문화와의 관계에서 볼 때, 이 작업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획일화되어가는 세계문화에 대해서도 생태적 다양성을 부여할 계기가 될 것이다.
근대 이후 세계문화는 서구문화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세계화가 가속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은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흔히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상상력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없다.
예컨대 청소년들은 이제 용을 사악한 괴물로 여기지 상서롭게 생각하지 않으며 인어아가씨는 있어도 인어아저씨의 존재는 꿈도 꿈 줄 모른다.
문화적 정체성 상실의 징후인 상징의 괴란(乖亂), 상상력의 전도(顚倒) 현상은 청소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상상력의 표준으로 군림하면서 특정 지역의 신화모티프에 착안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전 세계의 문화현상을 무차별적으로 설명하는 보편 기제(機制)로서 횡행한다. 지중해 연안 민족과는 달리 동아시아 민족의 신화에서 친부살해 의식은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문화적 토양의 차이를 무시하고 특정 문화에서 성립된 가설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해온 것이 우리의 실정이었다.
프로이트(S. Freud))가 동아시아인으로서 동아시아 신화를 접했다면 과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창안했겠는가? 왜 우리는 동아시아 신화를 바탕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스스로의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생산하지 못하는가?
동아시아 문화유전자 지도가 성공적으로 제작된다면 동아시아를 보다 심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세계문화의 다양성을 구현하는 데에 나름의 몫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동아시아 문화 내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작업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동질성 속의 차이를 인식하게 함으로써 동아시아 여러 민족 간의 이해를 도모하여 참다운 의미에서의 연대에 도달하도록 해줄 것이다.
진정한 연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동질성을 전제하고 차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동질성의 확인과 동시에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불붙었던 한·중간의 문화갈등은 동질성만 전제되었지 바로 이 차이의 문제를 소홀히 했던 데에서 발생한 것이다.
예컨대 단오절의 귀속 문제를 둘러싼 쟁론은 단오절이 중국으로부터 유래하여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민속으로 정착했다는 표면적 동질성만 염두에 두었지 실제 한국 강릉(江陵) 단오제(端午祭)의 내용이 중국과는 상당히 다른 토착문화였다는 차이성 즉 동명이실(同名異實)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성급한 연대 의식 이전에 동아시아 내부의 변별성을 확인하고 각국의 타자성을 겸허히 수용하는 호혜 의식의 단계를 거칠 것이 요구되는데 우리는 문화유전자 지도 제작의 과정에서 이러한 단계를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한․중․일 문화유전자 지도 제작의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사실 이 작업은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 의해 이미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기왕의 작업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안까지 포함하여 제시하게 될 것이다.
첫째, 이데올로기․ 사상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추상화된 비교보다도 실제 생활을 구성해온 세목들을 통한 비교가 효과적이다.
이어령 선생은 문화유전자를 추출해냄에 있어서 가치중립적이고 역사적으로 공유해온 구체적인 대상물에 우선 주목하였다. 선생의 이러한 방안은 미시적인 차원에서 동아시아 각국 문화의 동질성과 차이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에 가장 부합된다.
아울러 구체적인 대상물의 선정과 관련하여 우리는 동아시아의 사물 분류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태평광기(太平廣記)』․『태평어람(太平御覽)』등 전통 유서(類書)의 분류법은 오늘날 통용되는 린네(Carl von Linne)의 서양식 분류체계와는 다르지만 동아시아인의 사물을 분별하는 고유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중·일 문화유전자와 관련된 구체적인 대상물을 선정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유전자가 인체의 심층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문화유전자는 문화의 이면에서 우리를 규율해온 원형 같은 실체일 수 있다.
이야기하는 동물인 인간은 서사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억압된 본능과 욕망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신화․ 전설․ 민담 등의 전통 서사에는 해당 민족의 풍토와 습속에 따른 고유한 문화적 코드가 담겨져 있다.
가령 서양에서는 요정 이야기[fairy tale]가 널리 퍼져 있지만 한․중․일을 위시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그런 이야기 유형이 드물고 신선 이야기[immortal tale]가 우세하다. 반면에 서양 민담에서는 신선이란 존재자가 거의 출현하지 않고 성자․ 성녀가 그에 상응할 정도이다. 따라서 신선은 서양의 요정과 대조적인 차원에서 동아시아인의 심층에 내재하는 본능과 욕망을 집약한 문화적 징표가 될 수 있다.
셋째, 문화유전자 지도 제작의 과업은 대학이나 민간단체의 연구소와 같이 정치색을 배제한 기관에서 수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울러 한·중·일 3국의 연구소가 함께 협의하면서 공동으로 제작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과거의 실패한 동아시아 담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 자민족 중심주의 등에 함몰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청되는데 이를 위해 문화유전자 지도 제작의 주체는 민간단체가쳌쳌쳌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