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올해 플러스 성장의 가능성을 높였다.
특히 중소기업의 회복세가 눈부시다. 지난 상반기 중소기업의 수출액은 658억 달러로 경제위기 속에서도 전년 동기 대비 1% 성장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여전이 깊은 시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업자들도 있다.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바이오 삭스라는 아이템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이 폭주하면서 사업은 금방이라도 훈풍에 돛을 단 듯 나아질 줄 알았다.
그는 수출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외 바이어들의 요청에 따라 수출보험공사에 보증을 신청했다. 이 때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5년이 다 돼 가는 파산·면책 기록 때문에 수출 신용보증 이용이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법원은 그가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줬지만 사회는 그의 과거를 집요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희망을 봤던 그는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 때문에 다시 한 번 좌절을 겪어야 했다.
나다니엘 호손의 장편소설 주홍글씨에 등장하는 주인공 헤스터는 간통을 한 죄로 평생 가슴에 'A(간통을 뜻하는 adultery의 머릿글자)'자를 달고 살게 된다.
그 순간 친구, 이웃, 마을 전체가 적으로 돌변했다. 헤스터는 7년 동안 세상의 무시와 경멸을 참아내야 했다.
파산·면책자들도 특수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공공정보라는 구실로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 금융거래는 물론 휴대폰 개통, 인터넷 사용, 심지어 자녀를 위해 책을 구입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17세기 미국의 어둡고 준엄한 청교도 윤리는 헤스터에게 견뎌내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 주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미 40만명을 넘어서며 사회의 한 계층으로 자리잡은 파산·면책자들에게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량을 베풀 수 없을까.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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