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의 수레바퀴) 日本이라는 희한한 ‘무덤’

포천지역의 막걸리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순전히 군인들 덕분이라고 한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64년 포천의 군부대 인근 양조장 사장이 막걸리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다 군부대 납품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군인들이 훈련에 지쳐 힘들고 목이 마를 때 막걸리를 마시게 되면 뇌리에 각인되어 제대 후에도 자신들의 막걸리를 찾게 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결국 사장 생각대로 포천 일동막걸리와 이동막걸리는 군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셈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막걸리 열풍이 거세다. 덩달아 막걸리 종주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막걸리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다양한 맛을 내는 퓨전 막걸리까지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엉뚱한 곳에서 한국산 막걸리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포천 막걸리’라는 상표를 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두 손 놓고 있는 사이에 일본 기업 청풍이 지난해 11월 28일 일본 특허청에 ‘포천 막걸리’와 ‘포천 일동막걸리’, ‘일동막걸리’ 상표 등록을 한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특정 지명을 상표로 등록하지 못하게 한 우리 정부에 있었다. 이를 보완하겠다고 10년 전 ‘지리적표시제(GI)’를 도입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한다. 등록만 하면 국내외에서 상표권과 동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으나 홍보 부족에 승인 절차도 까다로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업체가 외형적 성장에 흥분하고 있는 사이 일본의 중소 업체에 우리 상표를 선점당한 것이다.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막걸리 최대 시장인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포천 막걸리라는 이름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다시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 미상불 참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자동차 시장 역시 한국 업체에게는 ‘계륵(鷄肋)’이나 다름없다. 국내 대표 브랜드인 현대차마저도 일본에서 한 달 판매량이 20대 미만이다. 일본수입차협회가 지난달 6일 발표한 9월 수입차판매실적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가장 낮은 수준인 11대에 그쳤다. 그나마 일본 판매 법인을 유지하는 게 대견할 정도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한국차가 일본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를 대략 두 가지 정도로 보고 있다. 하나는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의외로 차를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구매력이 있는 중장년층은 다양한 차종을 보유한 일본 메이커만 산다. 해외 메이커에 관심이 없다.

두 번째는 한국차가 일본차의 엔진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인식이다. 우리가 중국차를 대하는 것과 같다. 결국 디자인에 성능, 가격경쟁력을 갖춰도 한국차는 일본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막걸리를 두고 한숨을 쉰 외교통상부 관계자의 말마따나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대표 상품인 막걸리의 상표권마저 부지불식간에 가져가는 일본이니 자동차 역시 앞으로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숙제로 남을지도 모른다. 무덤도 이런 고약한 무덤이 없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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