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박용오(73) 전 두산그룹 회장(현 성지건설 회장)은 두산그룹 2대 회장으로 창업주나 다름없는 고(故) 박두병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미국 뉴욕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65년 두산산업 주식회사에 입사, 1974년 동양맥주 전무이사를 맡으며 그룹 경영일선에 나섰다. 이후 두산그룹 부회장, OB베어스 구단주 등을 역임한 후 1996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가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두산그룹은 그룹의 모태나 다름없던 OB맥주를 매각하고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을 인수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재계 서열 10위권으로 올라서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박 회장의 행보는 ‘형제의 난’으로 ‘급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당시 박 회장은 큰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비롯한 형제들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동생인 박용성 회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받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경영권을 잃게 된 박 회장은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의 계열분리를 요구했지만 두산 오너일가가 이를 거부하자 두산 비자금 실체를 검찰에 폭로했다. 이것이 ‘형제의 난’이 시작된 기폭제였다.
두산그룹도 박 전 회장을 가문에서 영구제명하고, 다음날 두산그룹 및 두산산업개발 회장직을 박탈했다. 박 전 회장의 차남인 중원씨도 두산산업개발 상무직에서 해임시켰다.
하지만 결국 검찰이 박 회장의 투서를 토대로 두산그룹의 분식회계, 횡령 등의 불법행위를 수사해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나란히 사퇴를 하게 됐다. 박용오, 박용성, 박용만, 박용욱 등 두산家 4명의 형제 모두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형제의 난’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박 회장은 약 2년간의 낭인 생활 끝에 지난해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모색했다. 그러나 1년 남짓한 시점에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해 재기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재계 관계자들은 “평소 소주를 유리잔에 따라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고, 골프와 야구를 좋아하는 등 호쾌한 성품”이었다며 “(자살은) ‘그 답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두산그룹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며 “장례 절차 전반을 두산그룹과 성지건설이 담당해 최대한 엄숙하게 치를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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