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인 만큼 '기업혁신' 될까

  • "진정한 혁신, 돈보다 시간 투자해야" 예산 많을수록 모험정신·위험감지력 떨어져

세계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경기침체로 피폐해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미래의 성장동력을 선점하려는 의지도 크게 반영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30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기도 살리고 미래 첨단 산업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수요 부진으로 고전하면서도 경쟁적으로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인력을 확충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투입한 자금만큼 혁신이 이뤄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콧 앤소니
혁신 전문 경영 컨설턴트로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스콧 앤소니는 그러나 혁신에는 '다다익선'이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혁신기업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혁신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앤소니는 3일(현지시간) 세계적인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운영하는 블로그(blogs.harvardbusiness.org)에서 막대한 자금이 혁신에 장애가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금에 대한 부담이 쉬운 길을 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등에 짊어진 예산이 많을 수록 리스크가 큰 미지의 길보다는 이미 알려진 안전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닦여진 길을 따라가봤자 다다르게 되는 곳은 결국 레드오션일 뿐이다.

가용자금이 늘어날 수록 기술력에 대한 맹신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진정한 혁신은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뜯어고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앤소니는 강조한다.

주머니가 넉넉해지면 위험 감지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과도한 자신감 탓이다. 1990년대 초 모토롤라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위성전화 프로젝트 '이리듐(Iridium)'이 대표적이다. 50억 달러가 투입된 이리듐은 1999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문을 닫았다.

   
 
모토롤라는 1990년대 초반 위성전화 프로젝트 '이리듐(Iridium)'을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막강한 자금력에 도취돼 리스크를 감지하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에 도취됐던 이리듐은 출범 초기 5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가입자는 1만명에 그쳤다. 전화기 가격은 3000 달러, 통화료는 1분당 5 달러에 달했지만 통화 품질은 기대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듐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지난 10년간 실패한 10대 아이템'으로 꼽히기도 했다.

앤소니는 더 큰 문제는 실패의 원인을 찾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다시 큰 돈을 들여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면 학습효과 때문에 보다 안전한 길을 선호하게 되고 결국 레드오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앤소니는 기업가들이 이런 실패를 막으려면 돈을 아끼되 인사 관리에는 관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금 활용을 잘 하라는 것이다. 그는 기업들의 혁신 능력이 뒤쳐지는 것은 결코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사나 의사결정 구조상의 문제나 기업 내에 퍼진 과도한 자신감, 전략의 부재 등이 문제라는 설명이다.

미국 회계 관련 소프트웨어업체 인튜이트(Intuit)의 창립자 겸 회장 스콧 쿡은 앤소니와 가진 인터뷰에서 "성공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을 응원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선임자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런 CEO일 수록 직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강조했다.

앤소니는 "직원들에게 돈을 쓰는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보다 훨씬 쉽다"며 "진정한 혁신을 원한다면 돈보다는 시간을 투자하라"고 말했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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