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공사의 광범위한 업무 범위가 오히려 공사의 연착륙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사가 금융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핵심 사업을 선정하는 등의 업무 고유화를 통해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사는 △성장 산업에 대한 자금지원 △사회기반시설(SOC) 확충 △중소기업 지원 △금융시장 안정 △부실채권 인수 등 금융지원부터 감독ㆍ통제 기능까지 모든 금융업무를 수행한다.
이 같이 광범위한 업무권한을 가진 조직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총인원 100여명, 자기자본 3조원으로 출범하는 공사가 해당업무를 모두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기존의 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신용보증기금ㆍ기술보증기금ㆍ자산관리공사(캠코) 등과 업무 영역이 중첩된다. 한국은행ㆍ금융감독원과도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금융공사가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승계하지만, 새롭게 생긴 조직과 다름이 없다"며 "산은, 기은과 같은 고유 업무 영역이 겹치는 곳들이 많아 경쟁에서 밀린다면 식물 조직화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사가 녹색산업 등 금융권의 지원이 약한 분야에 집중해 자신만의 업무 범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도건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공사는 민영화된 산은과 기은과 연계해 상업은행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녹색 산업들의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벌여야한다"고 말했다.
오규택 중앙대학교 교수도 "시장실패(Underinvestment)의 가능성이 큰 녹색산업 등에 공사가 자금지원을 벌이는 등 미국의 그린뱅크와 같은 고유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사가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산은ㆍ기은ㆍ신보ㆍ기보 등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간 금융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태정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공사가 제 역할을 찾기 위해 큰 행동을 취할 경우 민간 금융 발전 저해는 물론 모럴해저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와 공사도 정체성 확립을 가장 큰 해결 과제라고 보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산은 분할방안'을 통해 "정책금융공사에 중소기업 지원과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등 기능을 맡기겠다"고 강조했다.
유재한 초대 사장은 공사 창립식에서 "정책금융공사는 과거 정책금융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 제2의 산은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사는 리스크를 낮추면서 개별 산업 및 기업에 공격적으로 자금을 넣을 수 있는 온렌딩(on-lending) 자금지원 방식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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