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상의인터뷰)동아시아공동체, 한중일 신뢰회복이 급선무

"한중일 3국간 신뢰회복은 유럽연합(EU) 수준의 동아시아 공동체로 가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서로간의 믿음이 쌓일 때 경제적·문화적 통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유르겐 뵐러(Juergen O. Woehler) 한독상공회의소(KGCCI) 사무총장(사진)은 최근 아주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대담)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중일 간 신뢰 회복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뵐러 총장은 "수 백년간 앙숙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도 끊임없는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 현재의 EU가 탄생하는 데에 공헌했다"며 "이러한 믿음를 쌓기 위한 첫 단계는 공동의 관심사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만큼 한중일 3국을 이어줄 만한 공통점은 찾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뵐러 총장은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첫 단추는 경제공동체를 꾸리는 것이며 경제 이외 분야로 확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3국간 단일통화 가능성은 높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경기침체로 이미 한중일 3국은 상당한 규모의 통화스왑 체결했고 교역규모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단일통화에 대한 조건과 여력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뵐러 총장은 단일통화에 대한 한중일 3국간의 의지는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웃국가들과의 신뢰 회복은 물론 내부 통합이라는 숙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고 그는 꼬집었다. 

그는 "한국사회는 북한과 단절돼 있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분열돼 있다"며 "내부통합이라는 숙제를 마친 후 주변국과의 통합 범위를 점차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닮은 듯 다른 한국과 독일 사이에서 지난 35년간 징검다리 역할을 맡고 있는 뵐러 총장을 만나 유럽 통합과정과 EU 수준의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유럽은 반세기 동안 끊임없는 논의를 거듭한 결과 단일통화를 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지난 8월 취임한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유럽의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하기까지 과정을 알려달라.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현재의 형태로 발전하기까지 EU는 점증적 방식으로 통합을 준비했다. 

1953년 시작된 통합 논의는 이후 유럽경제공동체(ECC· European Economic Community)가 활발해지면서 더욱 가속화했다.

하지만 각국의 통화정책과 물가상승률은 큰 차이를 보여 유로화를 도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 마르크화의 경우 엄격하고 보수적인 정책으로 평가절상이 필요했고 이탈리아의 리라화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평가절하가 요구됐다. 그만큼 각국 통화가치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등 당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역내 교역이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해 상호간 통화안정성이 절실했다.

이러한 공동의 관심사가 단일통화에 대한 필요성을 불러 일으켰고 각국 정부는 유로화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먼저 통화조약(currency pact)을 통해 통화위원회를 발촉했다. 

위원회를 통해 EU는 수년간 각국 통화의 환율변동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실시해 단일통화의 성공가능성을 살폈다.

통화시장은 긍정적 신호를 보내며 환율변동폭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후 위원회는 유로화를 국가통화로 도입할 경우 필요한 규정을 세웠고 적합한 회원국만을 받아들였다.

명확한 규정과 엄격한 실행으로 현재 유로화 도입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단일통화 가능성은 얼마나 크다고 보는가?

"동아시아 공동체의 경우 EU보다 오히려 더 손쉽게 단일통화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근 한국, 중국, 일본의 통화스왑의 규모를 볼 때 이미 3국은 통화정책에 대한 상당한 공감대를 이뤘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3국 통화는 미국 달러와 연동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시장상황에 따라 비슷한 흐름을 보여 상호간 환율변동성이 크지 않다.

3국간 교역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단일통화에 대한 필요성도 인식하고 있다. 단일통화의 조건과 여력은 충분하다.

그러나 단일통화를 도입하려는 의지는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특성으로 인해 자국통화에 대한 외부의 영향력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하토야마 총리 역시 보수적인 일본 여론을 거스르기는 힘들다.

한국은 대통령이나 재무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부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단일통화에 대한 의지가 있더라도 유지하기 힘들다."

-지난 10월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정상들이 베이징에 모여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며 한국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나?

"한중일 3국간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3국은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어 교류는 활발하다.

하지만 통합에 대한 노력은 전무한 상태다. 정치적·역사적 사안에 대한 시각차 역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역사문제와 관련해서 유럽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수백년간 앙숙관계인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 문제로 여전히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양국이 경제적 필요성과 관심사를 공감하면 믿음이 쌓였고 경제적·문화적 통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경제적 공감대를 찾는 것만큼 국가 간 믿음을 쌓는 손쉬운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통합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초기 통합단계에서는 그 범위를 우선 경제에만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 이외의 분야로 확대해석하기 시작하면 복잡하고 해결하기도 어려운 문제를 우선 걱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독도처럼 민감한 사안 때문에 허송세월을 보내기 보다 협력을 통해 단기간에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경제적이나 환경적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주변국과의 신뢰를 쌓는 것은 물론 지나치게 분열된 한국사회를 통합하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북한과의 분단상황 뿐 아니라 내부갈등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역사교과서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은 일본과 역사문제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내부에서도 자국 역사교과서의 논조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은 내부통합이라는 숙제를 먼저 끝낸 후 주변국과의 공동체 구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

- 지난 9일은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이 지난 지금 동독은 어떤가?

"일부 동독 주민들은 구체제를 그리워하며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곤 한다.

지난 20년간 새로운 체제에 익숙해진 이들은 마치 직장인들이 대학시절을 떠올리듯 공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적인 생활 환경이나 경제 여건을 비교해본다면 아무도 '옛날이 더 나았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통일 이전 동독의 대부분 산업시설들은 가동을 멈쳤고 경제는 크게 낙후된 상태였다. 하지만 통일 이후 서독의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기반시설들이 속속 세워졌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물론 통일 이후 동독 투자가 기대만큼 경제적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대거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동독의 경제 활동이 기대만큼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다. 또 일부지역에서 에너지 및 공공시설이 인구수에 비해 초과되는 등 비효율적인 면도 많다."

대담-박정규 편집국장
정리-신기림기자
아주경제=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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