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 세기 동안 중소기업과 서민금융 지원에 주력해왔던 기업은행이 '귀족은행'으로 변신 중이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여신 비중을 늘리고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 업무를 강화하는 등 고신용 및 대형 여·수신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 1961년 문을 연 기업은행의 설립 목적은 △중소기업자에 대한 효율적인 신용제도 확립 △중소기업자의 자주적인 경제활동 지원 △중소기업 경제적 지위의 향상 등이다.
그러나 최근의 행보는 이같은 설립 목적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10월 말 현재 기업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원화대출)은 1조8868억원으로 지난해 1월(8671억원)보다 117.60% 급증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같은 기간 66조7434억원에서 84조1308억원으로 26.05%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 기간 예금은행의 총 여신 증가세가 20%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기업은행의 대기업 대출 비중이 늘어난 것은 금융위기 이후 신용경색이 심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중심의 영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올 들어 중소기업에 제공한 여신은 대기업과 자금 및 리스크를 분담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기업은행은 SK그룹·포스코·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이들 대기업의 1, 2차 협력 업체에 자금을 지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원 자금과 리스크의 절반을 대기업이 부담토록 해 금융기관의 책임을 기업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은행은 올 들어 VIP 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치과 병·의원 네트워크인 '예치과 네트워크'와 업무제휴를 맺고 전국 60여 개 병원에 저금리 신용대출인 '메디칼네트워크론'을 제공키로 했다.
이 상품은 병원 네트워크와 의사의 신용만으로 연 5% 초반대의 저금리 자원을 지원한다.
반면 기업은행의 개인신용대출 금리는 8.93%로 우리은행(7.53%), 하나은행(8.02%), 외환은행(7.40%) 등 일반 시중은행의 금리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다.
기업은행이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개설한 '강남 PB센터'는 금융자산 5억원 이상의 VIP 고객에 대해 특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강남 PB센터는 기업은행의 첫 번째 PB센터로, 향후 비슷한 PB센터를 증설할 계획이다.
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산업은행이 지주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기업은행이 유일해졌다"며 "기은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영업 행태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여신 방향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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