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상민이나 천민이 하늘처럼 높은 양반집안과 통혼(通婚)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상민이나 천민의 딸이라면 기껏해야 양반의 첩이나 될 수 있는 게 고작. 우리 사회에서 신분차별을 없애기까진 너무도 긴 세월을 참아내야 했다.
조선조 500년 세월을 다 지내고 간신히 조선조 말인 1884년 갑신정변 때, 처음으로 사민평등(四民平等)의 개혁정책이 나왔지만 3일천하로 끝났다.
또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서도 반상차별 철폐를 내세웠으나 일본군대에 의해 무위의 혁명으로 끝나고 만다.
같은 해 갑오개혁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신분차별을 없앴다지만, 이는 또 일본의 강압에 의한 개혁이라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신분차별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 후로도 수십년이 더 지나, 1945년 일제(日帝)치하에서 해방된 이후부터였다고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완전한 평등을 이루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요즘 결혼정보업체들의 행태를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몇해 전 한 업체가 이른바 '333클럽'이라는 고소득층 혼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데 그 조건이 놀랍다.
'연봉 3억원 이상, 본인재산 30억원 이상, 부모재산 300억원 이상' 재벌급만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몇몇 업체들에선 1000억원대 자산가의 데릴사위 공개모집, '200억 자산 골드 미스, 그녀의 특별한 공개 구혼' 등 이벤트성(?) 행사들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집안의 통혼조건들을 대하는 기분이다. 이 같은 현상들에 혀를 차는 보통사람들이 이상한 것인지, 소위 현대판 사대부들이 이상한 것인지 도통 판단이 안 선다.
이 와중에 최근엔 결혼정보회사 두 곳이 해묵은 문제를 들고 나와 날을 세우고 있다. 본질을 외면한 이들 싸움에 동종 업계는 착잡한 심경과 함께 ‘이미지 먹칠’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고소의 발단은 한 업체가 회원 수, 성혼커플 수 등에 대해 자신이 1위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다른 업체는 ‘이 같은 행위가 소비자 기만행위에다 수많은 결혼정보업체에 피해를 줬다’는 요지로 업무방해와 결혼중개업관리법 위반으로 고소를 했다.
문제는 회원 수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결혼정보업체의 행태다. 결혼정보업은 중매사업이다. 때문에 양질의 서비스와 이에 따른 성혼율이 중요하다. 회원이 많아도 성혼율이 낮다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본질을 외면한 채 외형만 키운다면 결국, 업체만 배불리는 꼴이다.
결혼정보산업 성장 가치를 회원, 성혼 수 등 숫자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은 사라져야 한다. 정량적인 가치보다는 결혼의 참다운 의미가 담긴 정성적인 가치가 중요한 시대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결혼이 희화화되고 사람들이 가정의 형성과 해체를 너무도 쉽게 생각한다. 결혼정보산업이 사회적 신뢰를 얻으려면 ‘결혼의 가치’에 대한 접근 방법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단순히 사람을 만나게 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기초인 한 가정을 형성하는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고소 사건으로 결혼정보업계에는 긍정보단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것은 뻔하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번 고소 사건이 결혼정보 업계의 자율적 자정운동의 시발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 관련업체 대표들이 만나 산업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라운드테이블’ 마련도 필요하다.
결혼정보 회사 서비스의 궁극적 목표는 성혼을 통한 지속가능한 가정 형성이다. 숫자놀음은 그만하고 서비스 질로 싸울 때다.
아주경제=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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