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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대 김을동 의원 |
김 의원의 이러한 유명세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꼬리표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유명세가 꼭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김 의원은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옥중에 계셨다"며 "아버지는 큰 일을 위해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넓은 집에 증조할머니·할머니·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여자 넷만 집을 지켰다"고 말했다.
어린시절을 어려운 환경 속에 보냈지만 항상 활발하고 주목을 받았다. 그에게도 '장군의 피'가 흘렀고 리더십과 연설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김 의원의 활동적인 성격은 그녀를 방송계로 이끌었고 대학에 재학중이던 1966년 동아방송 성우로 방송에 데뷔했다.
이후 소탈한 아주머니부터 당당한 여걸까지 다양한 장르의 연기를 보여주며 '국민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배우로서 충실한 삶을 살던 김 의원은 아버지의 ‘의지’를 이어받기 위해 정치의 현장에 뛰어 들었다.
서울시 시의회의원에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됐고, 16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문화특보로 활동했다. 이후 18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에 들어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그는 현장에서 얻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방송계와 문화계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 국감에서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국정감사에서 "작년 세계적인 경제불황 여파로 방송광고매출이 8.7%나 감소했음에도 코바코의 임직원 평균임금이 8300만원이었다"며 "이 금액은 297개 공공기관 중 상위 4.7%안에 드는 임금수준으로, 국내 중소기업 임직원 평균임금의 2.5배나 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최근 독립유공자 신청 자격을 확대하는 내용의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신청 자격을 4대 증손자녀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5000명이 넘는 독립투사들이 유공자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후손들이 나이가 들어 신청 자격을 잃은 경우가 많다. 현행법이 3대 손자녀까지만 유공자 등록 신청 자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국가의 조사가 늦어져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들의 자손이 여전히 많다"며 이번 법안이 빨리 통과돼 그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주경제= 팽재용 기자 paengme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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