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 부담 커
'밀어붙이기식' 말고 여론추이도 따져야
세종시를 명품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정운찬 국무총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 총리는 최근 한국경제학회 오찬을 마치며 "많은 경제학자를 모셨는데 반대 의견이 없어서 안심"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가치판단이나 주장하는 게 비교적 명확한 법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출신 정 총리의 이 같은 '안도'는 그동안 자신이 주장해온 것에 대해 비판여론에 시달리다가 나온 것이다.
그만큼 총리직을 수행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종시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의 부담이 크다는 방증이다.
정 총리는 지난 22일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단과의 관악산 등반에서도 "내가 최근 2~3개월간 여러가지에 시달리는 동안 체력이 떨어져서 혹시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며 "여기까지 잘 와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여러가지로 고민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비판여론이 많지만 추진하는 것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 총리는 세종시 문제로 정치적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다.
불과 한 달 전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은 아니다"며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원안대로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호언했던 그다.
경제학자로서는 어느 정도 의견을 피력했을 지 모르나 문제는 그가 정치적 셈법을 고민해야 하는 총리직에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을 내세우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친박계, 야당, 충청권 시민들의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고 있다.
특히, 충청을 비롯해 강원, 호남, 영남, 제주 등 각 지역에서는 세종시에 대한 정부의 기업유치활동이 '기업 몰아주기'라며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세종시의 기업도시 특혜가 기정사실화될 경우 지역 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종시특별법 개정도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대구경북의 경우 구미공단이 직격탄을 맞는 상황이고, 강원도에 추진중인 원주 기업도시는 크게 위축될 수 있어 지역 의원들은 법개정에 반대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 전반을 다루는 총리로서 무리수를 둬가며 이러한 학자적 관점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여·야 간 입장 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여권 내에서도 명확히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수정안을 진행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여론의 추이도 면밀히 따져야 한다.
야당과 그 지지자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채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그의 책상에는 세종시법 수정 건 외에도 처리해야 할 현안이 가득 쌓여 있을 것이다. 세종시에 '올인'하다가는 패가망신할지도 모른다.
다소 비효율적 사업일지라도 때로는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가 총리직임을 고려할 때 그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아주경제= 이나연 기자 n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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